이순신이 진단한 승리 요인은 거북선도 전술도 아닌 민심을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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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명량>을 만났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 전원을 대동하고서다.

    단순히 일반적인 영화 한편을 보러 나선 것은 아니다.
    사상 최대 흥행 성적을 거두며 국민적 관심을 모은 문화 콘텐츠.

    지난달 30일 개봉 후 1주일만에 660만 돌파.
    박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한 6일(개봉 8일째)에는 700만을 훌쩍 넘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럿 불편했던 사건들로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한 박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였기에 그 의미는 무겁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문화융성을 위한 문화가 있는 날의 행사의 일환으로 관람한 국산 애니메이션 <넛잡> 이후 영화를 본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명량>이 지난달 30일, 개봉 8일째에 불과한 것과 경호상 이유로 대통령의 외부 일정을 최소 10여일 전부터 조율하는 의전 일정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해석은 분명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합동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론을 결집했던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활성화와 국가혁신을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명량>에서 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대동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또 국민이 열광한 이순신의 리더십을 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 1, 1597년

    12척의 배로 아니 울돌목 한가운데 홀로 선 1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둔 이순신에게 아들 이회가 묻는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느냐고.

    "천운이었다."

    이순신은 그렇게 답했다.

    왜군을 침몰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울돌목 바다 한가운데 거센 조류에 생긴 소용돌이가 천운이었다?

    "그것이 천운이었다면 (소용돌이가 일지 않았다면)자칫 큰 낭패를 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갸우뚱 하는 이회에게 이순신이 말한다. 
    그게 아니라 그 때 자신을 구하러 달려와 준 백성들이 있었다는 것이 진짜 '천운'이라고.

    그에게 울돌목에 펼쳐진 깊은 소용돌이는 전투에서 벌어지는 단지 하나의 자연현상에 불과했다.

    이순신에게 정말 얻고자 했던 것, 그리고 얻길 바래 마지 않았던 것은 백성들의 마음이었다는 얘기다.

      - 영화 <명량> 中


    그리고 2014년.

    1597년 9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왜군 수백척이 침몰했다. 
    명량대첩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복의 야욕을 뿌리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수백명의 희생되고 생떼같은 학생들이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

    쏟아지는 정부에 대한 책임론, 거세지는 국민여론.
    사실이든 아니든, 논리적으로 맞든 그렇지 않든,
    백성들은 왜 우리가 나라의 잘못으로 희생되어야 하냐고 묻는다.


    # 2, 1597년.

    "6년간 함께 싸워온 동료들의 수급을 제 손으로 묻고 왔습니다. 정말 너무 무섭습니다."

    압도적인 전력차.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계속된 탈영사태에 흔들리는 군법. 그 상황에서 탈영하다 잡혀온 이순신과 함께 싸워온 한 병사의 눈물 담긴 울부짖음이다.

    묵묵히 듣던 이순신은 대답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했느냐."

    그리고 가차없이 그 병사의 목을 벤다.
    다음날 이순신는 수군 진영 집들까지 불태운다.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 살 것이다."

    그렇게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의 목을 베고, 승리해도 다시 돌아올 곳도 없앤 채 군사들을 독려해 출정한다.

       - 영화 <명량> 中


    그리고 2014년.

    최악의 참사와 국민적 분노에 몸을 사리는 부하들.
    제대로 된 구조활동은 이뤄지지 않았고, 썩어 없어진 교주의 시체만 잡으러 다닌 사정기관까지.

    하지만 그는 부하들의 목을 치지 않았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라고 외쳤지만, 여전히 부하들은 몸을 사렸다.

     


    # 3 1597년

    마지막 전투를 앞둔 이순신. 
    마지막 남은 거북선까지 불타 없어진 절박한 상황.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전쟁에서 빠질 것을 이순신에게 간청하는 아들 이회.

    그런 아들에게 이순신은 말한다.
    독버섯처럼 퍼진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어떻게 극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묻는 아들 이회.

    이순신은 조용히 읇조린다.

    "죽어야겠지. 내가."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순신은 죽지 않는다.

       - 영화 <명량> 中


    다시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나락에 떨어진 국민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풀 곳이 없다.
    자연스럽게 향하는 국정 최고통수권자에 대한 책임론.

    하지만 사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유감' '안타깝다'는 말은 어렵사리 나왔지만, 국민들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 # 4 2014년 8월 6일

    단순한 상업적 영화에 국가경영 이념과 철학을 끼워맞추는 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를 이렇게 말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국민의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 일병 사고.

    이순신은 물러서는 부하 병사의 목을 베고 백성들을 위해 싸우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한다.

    하지만 어렵다. 민심을 얻는 과정은.
    이순신은 그래서 얻기 힘든 백성들의 마음(民心)을 '천운(天運)'이라고 했다.

    쏟아지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부하의 목을 베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전투에 임한 이순신.
    그러고서도 민심을 얻는 것을 '천운'이라 표현한 이순신.

    그에게 박 대통령이 어떤 리더십을 느꼈는지는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그리고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들이 진정 향해야 하는 충성의 본질이 어딘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