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과장 취재 보도인 황색 저널리즘, 언론 폐악적 단면 마녀재판 이어져

  • 자유민주주의 정체성, 선동적 여론에 휘둘리지 말아야


  • 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국가안보법)
    -글로벌 정보포럼 회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Duke University, IUPUI 
    -검사(속초지청장),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조사국장 역임

    저서(대한민국 우수학술도서 선정)
    -국가정보-법의 지배와 국가정보( 법률출판사)
    -정의로의 산책 (삼영사·2011)  
    -국제인권법 원론 (삼영사·2012)
    -국가정보학 요해 (법률츌판사·2011) 등 다수


    황색 저널리즘의 현대판 드레퓌스 사건!


  • ▲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일할 국가개조의 적임자라고 내세웠던 문창국 국무총리 후보자가 장외 청문회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과 정치권의 합작 그리고 청와대의 무기력이 현대판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잔 다르크 마녀재판의 부활을 알린 것이다.

    황색 저널리즘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동과 과장 취재ㆍ보도를 말한다. 언론의 폐악적인 단면으로 선동의 마녀재판으로 이어진다. 

    주지하다시피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포병 대위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조작된 증거와 선동적 여론에 의해 간첩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섬으로 유배당한 사건이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에 기대어 반유대적인 언론의 무차별적 선동이 어느 한 유대인 장교의 인생을 말살한 인권유린의 마녀사냥이었다. 추후에 작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신을 언론에 기고함으로서 진실의 새싹이 자랐고 1906년에 이르러서야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미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가 마녀재판으로 처형당했다가 복권되었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선동과 거짓의 오류는 반복되는 것이다. 

    어느덧 잊혀가고 있지만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은 작전명 "폭풍"으로 남한에 대한 전면 전쟁을 개시했고 파죽지세로 남한 전역에 밀어닥쳤다. 북한은 남한을 점령하는 동안에 인민재판(人民裁判)으로 무수한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학살했다. 인민재판은 대중을 선동하여 처벌하는 숙청으로 공산주의자들의 공포의 체제유지 수법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최면에 걸린 집단적 광기로 인민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인민재판에는 법은 적용되지도 않고 시스템이나 절차는 필요도 없다. 그저 광기의 선동자가 내세우는 것을 단죄의 기준으로 삼는다.

    인민재판은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에서 유래한다. 심리적으로 마녀사냥은 이성이 마비된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이다. 오늘날 신속하게 선동과 거짓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준 인터넷과 SNS는 마녀사냥을 매우 용이하게 하고 사이버 악마재판을 더욱 빈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 하루 전날인 2014년 6월 24일!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한 6․25 한국전쟁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인민재판이 부활했다. 문창국 총리 후보자는 국회법이 정한 국회 청문회에는 서보지도 못한 채 황색 저널리즘과 정치권의 선동으로 만들어진 여론재판의 장외 청문회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문창국 후보자의 능력이나 본질적인 사상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는 실종되었고 자유는 종언을 알렸다는 사실이다. 여론재판이 사법재판을 뒤집었고, 선동과 거짓의 인민재판이 한 개인을 단죄했다.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몰수패였다. 한 사람에 대한 무차별적인 가치재단은 이념적 그리고 사상적 쓰나미였다.

    이성은 광기에 양보했고 논리는 감정에 맥을 추지 못했으며 민주법치국가의 법과 제도는 여론이라는 추상성에 갈 길을 잃었다. 결론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적법절차는 선동과 거짓에 자리를 내주었고, 현대사회 정의의 핵심인 절차적 정의는 난파되었다.   

    자유민주주의 문명국가에서 마녀사냥의 인민재판은 국제사회에서는 국가의 수치이다.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포용적인 제도가 국가성패를 결정짓는다고 결론 내렸다. 포용적 제도란 규칙과 법이 살아 있으며 올바른 기회를 보장하는 절차로, 사회의 분쟁과 갈등이 제도화된 메커니즘과 수단에 따라 적법하게 해결되는 것을 말한다. 

    문창국 사태에서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은 적법절차와 절차적 정의 그러므로 포용적 제도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 선봉에 황색 저널리즘과 여의도발 정치 논평이 자리한다.

    한 개인으로는 나약한 문창국 후보자가 인민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의 인민재판으로 단죄 당할 때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막아주지 못했다. 이성이 깨어있지 않으면 법과 제도는 무용지물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인간실패(human failure)를 경험한 것이다.  

    문창국 인민재판의 책임은 학문적으로는 절차적 정의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면서 역사에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인류가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인권과 자유민주주의에 남긴 치욕 때문이다.

    역사적 책임의 핵심은 순국선열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주의를 뿌리 채 흔들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가 부정당했고, 국회법이 정한 청문회를 부인했으며, 현대사회 정의인 핵심인 절차적 정의가 말살되었다는 점이다.

    황색 저널리즘에 휘둘린 집단 광기가 한 개인에 대한 인권유린의 가공할 위력도 보여주었다.

    문창국 인민재판의 가장 커다란 책임은 언론과 정치권이지만 청와대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민재판의 위험성을 깨닫지도 못한 채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좌하지 못한 비서실장의 책임은 크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선동적 여론과 정치판에 휘둘리지 않는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갖는 길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식적인 한반도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이념적 쪽박이 될 위험성이 크다.

    거창한 국가개조에 앞서서 언론과 국회개조가 먼저 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는 아주 쉽게 인민민주주의 또는 민중민주주의에 굴복할 수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선동과 거짓의  냄비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