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하 범사련)이 주관하는
    [이석기 종북사태로 본 가짜 민족주의·진짜민족주의] 이슈진단 토론회가
    25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는
    김정수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의 사회로
    전우현 한양대학교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 학회장,
    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김정호 연세대학교 교수,
    임헌조 자유주의진보연합 공동대표가 토론에 참석했다.


    "그동안 종북세력들이 민족주의의 미명 아래 민주화세력,
    진보세력으로 불리며 국민을 우롱하고 지식인 사회와 국민 속에 파고 들었다."

       - 전우현 교수


    이날 토론회에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석기와 종북세력들의 활동이
    그동안 민족주의로 미화돼 어떻게 국민 속에 파고들었는지
    비판적으로 알아보고,
    민족주의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전우현 교수의 발제를 중심으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다음은 전우현 교수의 발제전문이다.


    이석기 종북사태로 본 가짜민족주의 ㆍ진짜민족주의

    전우현(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월 17일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판결(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내렸다. 그와 함께 기소된 6명에게도 각각 징역 4-7년, 자격정지 4-7년이 선고되었다. 이들은 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를 결성하고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또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부합하는 발언을 하고 지휘체계도 완연히 갖추었다고 전한다. 또, 유사시 군사적 지시를 준비하고 대한민국을 타격하여 북한의 남침이 있을 때 자체적으로 무력화할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철탑과 주요시설 파괴, 정보전쟁, 후방교란 활동 등 명백히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하고 헌정질서를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주거지와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발견된 수 십 건의 문건과 혁명영화, 컴퓨터 파일 내용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의 정권이 민족주의 정통성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즉, 좌파 민족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하고 있다.

       아직 상소심이 남아 있지만 이러한 법원의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지금은 1945년 해방 직후도 아니고 1950년 6.24 전쟁 때도 아니다. 왜 이러한 일이 2000년 하고도 14년이 지난 오늘에 일어날까?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연쇄적으로 무너질 때 이미 북한체제도 생명이 다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북한의 체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지속되었고 그를 추종한 남한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우리가 내부적으로 사상적으로 무장하지 않은 탓이다. 그저 태만하게 국제정세에 따라 한반도도 자연스럽게 자유민주주의로 정리될 것으로 기대하기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할 것을 역동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렇게 쉽게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마전 북한의 김정은은 2인자이고 고모부인 장성택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끌어내어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했다. 잔혹한 정도가 나찌의 히틀러,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폴포트, 조선의 연산군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런 폭악무도한 테러 집단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핵무기를 들이대고 있다.

    더 통탄할 것은 이 핵무기를 만들게 돈을 댄 것은 남한 정권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찬양하는 세력이 일부이지만 대한민국에 존재함을 알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고 은근히 북한의 소련군정, 토지개혁이 미군정, 이승만의 개혁보다 더 잘된 것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광풍의 근원은 공산주의 등 좌파 계급투쟁주의다. 그런데 이 좌파 계급투쟁주의가 마치 민족주의인양 위장을 한 게 더 위험하다. 좌파가 사람을 모으는 데에는 계급투쟁주의도 있지만 북한의 민족주의가 옳다는 시각이 완연히 있다. 이석기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북한을 추종한 것도 북한의 수립과 정권유지가 민족주의에 부합한다는 기본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대로 나가면 대한민국은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방 이후나 지금에나 좌익, 좌파는 민족주의 정서를 가지고 항상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호재로 삼는다. 이석기와 그 조직원(RO)도 그런 좌파 민족주의인 북한을 숭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좌파의 학자들은 많은 젊은이를 이런 방향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니? 이처럼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많다면 무너지는 것이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한민족 8천만 명이 기댈 언덕이 없어진다. 좋든 싫든 대한민국이라는 언덕이 있어왔기에 우리 한민족은 자존을 유지하고 생존을 보장받아 왔다. 이제 그 언덕이 무너지려 한다. 우리의 민족관, 국가관이 불확실하게 된 결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등 모든 분야가 미래에 어찌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필자는 이 불안, 절망, 분열을 자유민주주의화된 민족주의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으로 극악한 인권침해의 북한에서 신음하는 동포를 구원할 수 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제어하는 힘은 바로 민족주의의 도덕성으로 무장된 자유민주주의에서 나온다. 해방 이후 한민족을 괴롭혀온 민족분열, 전쟁의 고통과 민족 에너지의 쇠퇴를 극복할 정신적 자원(精神的 資源)이 여기에 있다.

    생각건대, 우파진영(자유민주 진영)은 민족담론(民族談論)을 현재 주도·장악하지 못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라는 인간본성에 지극히 합치하는 가치관마저 공고히 지켜내지 못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그리고 곧 있을 남북통일의 준비작업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어, 영어, 수학 성적 잘 올려서 선생님한테 칭찬 듣는 정도의 지식인 엘리트는 우리 사회의 지도자 요건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이 성장하여 교수, 판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는 7여 년 전 내게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이 망해도 상관없다. 만약 공산주의로 된다면 그에 맞추어서 살면 되지”라고. 이 사람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행정고시도 합격한 초엘리트다. 이 말을 들은 순간 피가 거꾸로 흘렀다. 이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나는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대신 생각을 모으고 모아 이 글을 쓴다. ‘한 사람에게 화를 낸들 무엇하리.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 중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이 여럿 있을 테니까’.

     뚜렷한 철학적 신념, 정치적 소견이 없는 곳에 탐욕(貪慾)과 연고주의(緣故主義)만 득세함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하여 사이비 우파 정치가가 올바른 마음으로 서서 진정한 우파로 거듭나고 애국자, 민족주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들이 올바른 생각으로 굳건하게 서면 훌륭한 경세(經世)가 있고 부국통일(富國統一)의 비전이 나올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국부증대(國富增大)를 통한 민족독립(民族獨立), 즉 부국독립(富國獨立)의 민족주의(民族主義) 목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우파를 더 “노블리스 오블리주”하게 하고 좌파를 친북 편향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나아가 진정한 민족주의 즉 부국독립의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형제 이념으로 요구함을 일깨우고자 한다. 그와 함께 정치투쟁, 사상투쟁 없이 자유민주주의 경제가, 자유민주주의 교육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도 알리고자 한다.

    우리는 분단민족이고 외세의 압력을 항상 받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민족주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라는 건전한 정서로 개인주의 지상의 폐단을 고칠 수 있다. 북한도 민족주의를 활용하지만, 우리는 이 민족주의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더 알맞은 것이다.

    OECD가입국이고 세계 경제 12위권에 속하는 우리가 중국인,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처럼 민족주의에 호소해야 하는 연유이다. 민족주의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 절대주의, 제국주의, 히틀러의 인종주의, 파시즘 등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서양에서는 대체로 민족주의 정서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수 천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일제 36년을 거쳤으며 4대 최강국에 둘러싸인 우리 한민족은 민족주의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민족의 분단이라는 살을 도려내는 고통과 그로 야기된 6.25전쟁, 여전한 북한의 전쟁위협을 생각할 때 생존을 위해서도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족의 완전한 통합이 필요하다.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욕구에서 나온다. 민족주의가 본래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큰 위력을 가진 이유는 그 구성원에게 강한 긍지를 심어주고 민족 단위로 형성된 문화, 즉 민족문화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정신적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무릇 돈이나 권력만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세계화에 의해 아무리 부를 창출한다고 하여도 중국대륙의 팽창야욕, 인접 일본과의 끊임없는 생존경쟁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국내의 어떤 정파에서 정권을 잡든지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찌 ‘민족’ 이 중요하지 아니한가?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 등 지성계와 문화계는 좌파의 천국으로 변했다. 북한의 위협에는 거의 묵시적인 동조를 하고 대한민국의 처사에는 조금의 빈틈만 있어도 비난의 화살을 꽂는다. 자발적인 의식의 진화 없이 잘살기 운동(경제운동)만으로는 급진 좌파, 대한민국 부정사상을 견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의식의 진화는 사랑을 매개로 하여 통합과 전진을 약속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여기에 바로 민족주의라는 체계화된 사랑이 요구된다. 우리가 경제건설의 물질 고양운동과 함께 민족주의의 체화(體化)를 60년대부터 함께 도모했더라면 북한체제를 숭상하는 좌익, 국민분열을 부채질하는 좌파가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에 서구의 노동당, 민주당과 같은 의회중심주의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좌파가 우파를 견제하는 성숙된 민주주의의 기초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1990년대 들어와 본격화된 전지구화론 및 시민사회론은 기존의 민족주의라는 하나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에서 신기하게도 우파와 좌파 양쪽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민족주의, 민족 정체성을 해체하고 폐기하는 것이 가능한가? 민족을 해체하고 폐기한 후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어떤 식으로 될 것인지? 구성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강력하고, 다양한 민족문화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재산이다. 어찌 이 귀한 유산을 버리고 고아원, 양로원 방문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 사랑의 출발점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외래 문물, 문명에 대해 관용하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는 아무 목표도 없이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민족주의는 비합리적인 정신사의 잔재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의식 깊숙이 자리하는 억눌림과 한의 정서에 닿아있다. 한민족의 공동운명의식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을 연결해주는 끈이다. 모든 개인은 개별성을 지니지만 이 끈에 의해 공동 귀속성도 가지게 된다. 한민족 모임체 안의 누구라도 개인의 주인됨을 느낌과 동시에 민족의 공동성, 푸근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주로 민족공동체를 꿈꾸고 있지만 자기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배타적 민족주의자가 아닌 한 다른 민족도 사랑하고 인류애도 실천할 줄로 믿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족모임체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지만,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므로 인류 동포주의에로의 길은 항상 열려있다. 암울한 일제시대 3.1운동이라는 민족운동을 하면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정신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민족에 대한 사랑의 문턱도 채 넘지 못한 상태의 “사해동포주의”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현재의 북한 핵무기 위협, 미사일 공격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전쟁위협이 민족주의에 반하는 것임을 밝혀나가야 한다. 그 위협은 대다수 북한동포의 의사와는 다른 것이고 대한민국 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속, 협조를 강조한 결과 우리 민족공동체의 힘이 강화되고 남과 북이 하나로 얼싸안는 통일의 계기를 이 위기의 순간에도 준비해야 한다. 민족공동체는 개인 하나 하나를 뜯어서 산술적으로 더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이것은 연대효과(시너지 효과)이다. 우리는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이 연대효과를 죄악시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연대효과에서 나타나는 한민족의 고양된 에너지는 한 개인 개인이 이룩할 수 없는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 아시아의 번영, 나아가 세계의 평화, 복리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 한민족 민족주의는 한민족의 생존욕구에서 나온 매우 현실적인 요청이다.

    민족주의는 좌(左)의 이데올로기와도, 우(右)의 이데올로기와도 결합할 수 있다. 즉 중성적(中性的) 존재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민족주의라는 에너지를 우(右)로 결부시켜야만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계급성으로써 민족 내부에서 헐뜯고 싸우는 좌(左)의 이념보다는 대외적으로 번성·영광을 구가하는 우(右)의 방향이 훨씬 생산적이고 이득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민족주의는 반 FTA와 연결될 수 있다....세계화, 선진화에 역행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배타적‧저항적 민족주의만 염두에 둔 탓이다.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적 이념과도 잘 결합할 수 있는『생존단위』개념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공산주의나 김일성 수령주의에서도 “우~리 민족끼리!”라고 하여 마치 자기네가 민족주의자인 것처럼 선전한 것이다.

    그런데 깊이 보면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해 부정된다. 이는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통한 국제공산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유럽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가 부르조아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민족주의를 계급투쟁에 유해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훗날 레닌이 민족주의의 유용성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민족주의와 계급투쟁의 결합을 시도했다. 세계적으로 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가 주창한 좌파 민족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는 좌익혁명을 위해 민족의식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컨대, 모택동 사상도 공산주의 사상에 민족주의를 가미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수용하여 대성공했다. 사실 베트남 민족주의는 서양의 부르조아 민주사상으로부터 유입된 것이었지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콜럼비아, 페루, 칠레, 베네수엘라 등 남미국가도 민족주의를 사회주의에 접목시킨 예다.

     북한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성립한 정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에서 좌익의 민족주의는 이른바 ‘애국주의’라고 스스로를 미화한다. 이 ‘극좌파 민족주의’는 자신과 다른 내용을 지닌 모든 민족주의를 부정한다. 좌파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라고 자화자찬‧극찬한 것은 우파 민족주의를 반(反)애국주의로 내몰기 위해서이다. 아예 좌파 민족주의가 아니고서는 민족주의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입도선매(立稻先賣) 선언이다. 다른 입장에 있는 민족주의는 ‘민족반역자의 사상’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좌파 민족주의가 아닌 민족주의는 미제 침략자를 도와주는 것이라고까지 한다. 좌파 내지 공산주의 사상에 입각하지 않은 어떤 자도 ‘민족’ 내지 ‘민족주의’사상을 설파하지 말라는 독점선언이다. 어떤 논리적, 실제적 근거제시도 없고 반론의 기회도 허용되지 않는다. 비(非)공산주의적, 비(非) 좌파적 담론 일체를 친(親)제국주의, 반(反)민족주의로 덮어씌운다. 공산주의 또는 좌파 지상의 논리구성이다. 그런데 이는 ‘민족’, ‘민족주의’의 완벽한 독점공급 주장에 불과하다. 북한의 소위 ‘애국주의’ 또는 ‘좌파 민족주의’는 온 세상을 좌파의 정치 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본다. 그 색안경으로만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편집증(偏執症), 독식욕(獨食慾)이다.

    한민족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만나야 한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가난탈피와 국제적 생존 확보라는 삶의 원초적 욕망을 해결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우파,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만나야 한다. 좌파그룹이 민족주의에 저항주의 개념을 가미하여 이를 국내적(반정부 투쟁), 국제적(반미 투쟁)운동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짐은 당연하다. 이는 한반도의 환경이 나빠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열강의 힘 앞에 무력감(無力感)을 갖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나 상대방의 힘에 압도된다면 우선 저항적, 투쟁적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한반도에서 저항적 이념만에 의존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것이다. 열강에 둘러싸여 있을수록 가장 효과적 대응‧투쟁은 나라와 민족의 정신‧경제‧군사의 힘을 기르는 일이다. 스위스, 이스라엘의 예를 보라. 자주자강하여 교육과 산업의 수월성을 갖출 때에만 비로소 열강에 맞서는 자주노선이 가능했다. 그렇지 않은 저항적 자주노선은 요란한 포퓰리즘 구호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강자의 힘에 돌파당하고 만다.

    그런데 참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 지식인 내부에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우파가 분단국가 형성을 촉진하였다는 인식이 좌파 지식인에게 일부 깃들어 있다. 과연 옳은 생각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이 잘못인가? 해방 이후 신속하게 북한지역에 사실상 굳어졌던 실체적 공산주의 정권과 남한 내부의 뿌리깊은 공산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에 대항한 것이 실수인가?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만든 것이 그토록 원통한가? 역사적 검증을 철저히 하지도 않으면서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것은 선입견이요, 학자답지 않은 것이다. 좌파 이념에 기울어진 지식인들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멀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파와 민족주의를 절연하려 하였다.

    7-80년대 남한의 문학분야에서 전개된 민족주의 운동은 비록 그 순수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민족문학론, 노동해방 문학론에 기울었다. 그리하여 좌익문예조직과 문인들을 미화하는 부작용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민족주의 운동이 비록 동기는 좋았으나 프롤레타리아 이익 우선주의에 빠져 좌파이념과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산업화 시대의 부산물인 열악한 근로환경에 주목한 나머지 문학자들이 휴머니즘으로 노동해방을 부르짖은 것은 백 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너무 인색하였다면 지식인으로서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해 어떤 내용을 가미하건간에 우리 민족의 빈곤해결, 청년실업해결, 저출산해결, 민족생존 확보라는 숨통 틔우기에 기여한다면 좋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심지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중 어떤 것이 여기에 적합한가? 이미 결론이 나와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민족의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면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만나야 한다. 또, 자주독립의 민족주의를 주창할 때 우리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열강으로부터의 민족생존 보전이라는 목표를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민족의 생존 확보라는 최고 목표가 달성되고 민족의 총체적 에너지가 팽창될 때만 자주(自主)와 통일(統一)이 달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민족 민족주의라는 신부(新婦)는 한민족의 먹고사는 문제, 우리 민족의 국제적 자존을 드높이는 신랑(新郞)과 결혼해야 한다.

    주창하건대, 한민족은 이제라도 일제 식민지 치하 러시아 공산혁명의 영향을 받은 좌파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좌파 민족주의는 일제치하 암울한 주권상실의 시기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국가간 생존경쟁 상황은 과거에 얽매일 겨를이 없다. 한민족 8천만이 앞을 향해 힘껏 달려도 모자랄 판이다. 우리가 빈곤탈피와 자존, 자위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면 그에 걸맞는 민족주의로 탈바꿈해야 한다. 계급투쟁적이고 무정부적이었던 민족주의 이념(계급적 민족주의)보다 더 크고 열린 미래지향 민족주의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21세기의 세계관 필요성). 민족주의와 좌파(인민민주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의 결합도식은 민족주의와 우파(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의 결합도식으로 바뀌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더구나 한민족 민족주의는 현재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우파 지식인에게 한층 더 높이 고양된 가치가 추가로 있음을 일깨워줄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만나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자유주의 원리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임에도 이를 잘 알지 못하는데다가 눈 앞의 평등지상주의 이익이 사탕처럼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유일한 지향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길만이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국민통합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기초로 해야 사회적 협동이 가능하고 모든 개인의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국가적 평화를 유지하게 한다. 나아가 민족주의의 최대 목표인 민족의 가난 탈피, 외세 억압 배제가 가능하다.

    좌파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를 긍정하는 민족주의를 지향해야만 대한민국 국민 5천만이, 우리 한민족 8천만이 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