沒정체성-거꾸로 선 세태 바로 세워야
  • 대한민국에서

    6, 7, 8월이 의미하는 것


    [나라만들기] 65년, 우리의 국가정체성
    남(南)은 계몽과 시장 경제 모델 추구,
    북(北)은 세습 왕정·쇄국·반(反)시장 추구
    대한민국은 성공하고,
    북한은 실패!

    이제 국민 행복 추구해 격차 메우고
    몰(沒)정체성 거꾸로 선 세태 바로 세워야


  • 6, 7, 8월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6월 6일 현충일,
    6월 25일 남침 63주년,
    6월 29일 제2 연평해전 11주년,
    7월 17일 제헌절,
    7월 27일 휴전 60주년,
    8월 8일 한·미 방위조약 가(假)조인 60주년,
    8월 15일 대한민국 65주년.

    이런 날들을 꿰뚫는 한 줄기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의 [나라 만들기] 65년을 떠받쳐 온 핵심 가치,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이란 말을 거론하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국가주의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근대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틀을 어떤 모습으로 짤 것인가?"
    하는 물음을 말하는 것이다.
    17~18세기 근대 국민국가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세계 어느 나라-어느 국민이든 예외 없이 고심해 온 보편적 이슈다.
    식민지-반(反)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일수록,
    이것은 더 심각한 사활문제로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너 마이스너>의 저서에 의하면,
    독일 러시아 중국 같은 [뒤처진 나라]들의 국가 정체성 논의에는 항상 공통된 쟁점이 있었다.
    근대화를 서구 모델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문화와 정치는 전통 그대로 둔 채 서구의 과학기술만 갖다 쓸 것인가,
    아니면 아예 문 꼭 걸어 잠그고 쇄국(鎖國)으로 나갈 것인가의 싸움이 그것이다.

    독일의 군부-관료-프러시아 지주는
    영국 프랑스 같은 자유주의-시민혁명-자본주의를 퇴폐적인 것으로 적대했다.
    그리고 그들의 독일 관념철학-낭만주의-역사주의에 따라
    정치의 근대화를 뺀 비스마르크 식(式) 근대화로 나갔다.
    그 후 [나치스 독재]-[동독 볼셰비키 독재]를 거치고 나서야,
    독일은 비로소 서구 민주주의를 통합시킨 국가 정체성으로 굳히게 되었다.

    러시아에선,
    [러시아 정교(正敎) 공동체]를 지향하는 반(反)서구적 슬라브주의자(Slavophiles)들과
    서구주의자(Westernizer)들이 맞붙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막장은
    반서구주의의 극단 [볼셰비키 독재]였다.

    그것이 74년 만에 무너진 후에도,
    고르바초프-옐친 등 구세력 사이에선 똑같은 싸움이 재연되었다.
    지금의 푸틴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 정체성은
    슬라브 전통주의에 한 다리 걸친 [외형적 민주주의](facade democracy)에 가까울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도
    서양의 침식과 청(淸)의 쇠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본질(體)을 밝히는 건 역시 유교사상이며,
    서양 학문은 그저 겉 세상(用)이나 다룰 뿐(中學爲體 西學爲用)이다."


    "아니다.
    유교 자체를 근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孔子改制)"


    "아니다.
    아예 서구화로 가자.(全盤西化)"


    이런 주장 사이에 긴 논쟁이 벌어졌다.
    이 풍파 끝에 마오쩌둥 공산당은
    공자(孔子)와 서구주의를 둘 다 무덤 속에 파묻었다.
    그 극단이 <문화혁명>이었다.

    덩샤오핑의 중국은 그러나 공자를 다시 살려냈다.
    공산당 리더십-유교문화-시장경제-애국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세우려 했다.
    서구적 자유주의를 뺀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중화(中華)의 재결합이었다.

    이런 여러 역사적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후발(後發)국 근대화를 위한 국가 정체성 세우기에는 이런 모델이었든 저런 모델이었든,
    성공작과 실패작의 두 종류가 있었다.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유례없는 성공작,
    북한의 그것은 유례없는 실패작이었다.

    계몽사상의 전통(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민주 공화)과 시장경제 모델은
    반세기 만에 대한민국을 세계 8위의 교역국으로 올려놓았다.

    반면에 세습 절대왕정-쇄국주의-반(反)시장 모델은
    마르크스주의자 <슬로보예 지젝>까지도 놀란 그대로,
    [무섭도록 기괴하고, 보는 것만도 끔찍한] 북한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이어지는 과제는,
    국가 발전과 국민 개개인 행복지수 사이의 격차를 메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성공한 모델]로 [실패한 쪽] 황민(荒民)을 초대하는 일이다.

    이게 [행복한 통일]을 주도할 [성공한 모델]의 [선교사(宣敎師)적 민족주의]다.

    역류(逆流)는 물론 있다.
    자유 민주 공화에서 자유를 빼자는 말들,
    [기괴하고 끔찍한 것]을 [민족적]이라고 하는 말들의 역(逆)정체성이 그렇다.

    그리고 북으로 끌려가는 탈북 청소년들을 멀거니 바라만 본,
    무감각의 [몰(沒)정체성]이 그렇다.

    6, 7, 8월은 이런 물구나무선 세태를 바로 세우라는 영웅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다.
    계몽의 아침은 아직 다 밝지 않았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조선일보 특별기고 2013.6.4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