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31호>
    ‘국가’와 ‘국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링컨>

    배 진 영   /월간조선 차장 
     
      영화 <링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을 관람했다.
    1865년 노예제 폐지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링컨의 노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에서 링컨은 수정헌법 제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관직을 대가(代價)로 한 매수 등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해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안철수는 이 부분이 인상 깊었는지 “어떻게 여야를 잘 설득하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서 일을 완수 해 내는가. 결국 정치는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감명 깊게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다른 부분들을 인상 깊게 봤다.

    “오직 하나의 나라만이 있을 뿐”

      첫째는 북군 총사령관인 그랜트 장군이 남부의 평화사절들을 접견하는 부분.
    그는 남부 측의 서한에 “두 나라 사이의 평화”운운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여기 ‘두 나라’운운한 부분은 수정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나라(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고, 나는 반역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랜트는 남부와의 평화교섭의 필요성을 인정해 링컨에게 남부 사절단과 대화해 보도록 진언하지만, 북부가 유일한 합법국가이며 남부는 반란집단일 뿐이라는 원칙은 견지한다.
    이는 남북전쟁 내내 링컨이 견지한 입장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부건, 국민이건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국가이며, 북한공산집단은 반란집단에 불과하다”는 신념이 땅에 떨어져 있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 심지어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이 정통성 있는 국가라는 사특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이념적 혼돈의 시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공동체의 대의에 공감, 헌신하는 것이 국민이다

      둘째는 링컨이 백악관의 흑인 가정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다.
    흑인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이후 미국 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링컨과 이야기를 나누던 흑인 가정부는 자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고, “내 아들은 전쟁터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저라는 국민입니다, 각하”라고 말한다.

      이 흑인 가정부는 ‘국민(nation)’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한 것이다.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대의(大義)에 공감하고 그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남북전쟁 시기를 두고 말한다면, 미합중국과 미합중국이 지향하는 이상(理想)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흑인이라 할지라도 미합중국의 국민이 된다.
    반면에 백인이더라도 미합중국의 헌법적 가치에 반기를 든 사람은 ‘반역자’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우를 보자.
    예컨대 이자스민 의원은 필리핀 태생이지만 스스로 ‘대한민국의 며느리’라고 이야기하고, 자식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키워 왔다. 그래서 이자스민은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이 땅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정희나 김석기, 김재연 같은 종북좌파(從北左派)들도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민족의 핏줄을 이었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거부하고 정신적-정치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민으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대포와 피로 지키는 것

      셋째는 링컨이 남부의 평화사절단을 접견하는 대목이다.
    링컨이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남부대표단은 냉소적으로 쏘아붙인다.
    “잘난 척 하지 마시오. 당신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결국 대포와 피로 지켜낸 것 아니오?”
    맞는 얘기다. 조국, 민주주의, 자유는 필요하다면 대포와 피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포화가 두려워서, 피를 흘리는 게 무서워서 조국을, 민주주의를,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포화가 두렵다고, 피를 흘리는 게 무섭다고 조국을, 민주주의를, 자유를 포기하는 자의 앞에는 ‘노예의 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종북좌파들은 곧잘 속삭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고, “평화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그것은 조국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게 하려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그 꼬임에 넘어가는 순간, 대한민국도, 자유민주주의도,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도 끝장난다.

    이런 부분들 말고도 <링컨>은 절대고독의 자리에 선 리더십의 고뇌,
    의회에서의 대화와 타협은 무엇인지, 정치에서 궤도(詭道)는 어디까지 용인되는지,
    보다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도 정당화되는가’하는 문제 등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국가’와 ‘국민’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영화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