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등급식..낙인감 전혀 없어다른 항목 쥐어 짜 교육복지 예산 마련..서울 학교 냉반방 예산 ‘0’원밥만 먹이면 끝? ‘학생 삶의 질’은 뒷전..
  • ▲ 2011년 1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무상급식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세금급식 반대 시민연대 주민투표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2011년 1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무상급식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세금급식 반대 시민연대 주민투표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무상급식이 다시 한 번 교육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10년 6월 있었던 민선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불붙은 무상급식 논란은 2011년 서울시의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사회적 화두가 됐다.

    당시 교육감선거에서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 혼합체) 진영은 ‘친환경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를 내세워 무려 6곳에서 후보자를 당선시키면서 대약진했다.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른바 [깡통진보] 교육감을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았다.

    차별 없는 친환경 무상급식, 보편적 무상급식의 구호는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보수 교육계가 무상보육 카드를 꺼내 들도록 만든 촉매체가 되기도 했다.

    약 2년6개월이 지난 지금, 무상급식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얻은 하나의 현상이 됐다.

    정치색과 찬반의사를 떠나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무상급식이 교육계에 깊은 시름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 말 재선거에서 당선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연일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시설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비롯한 교육복지 확대로 서울지역 초중고등학교의 냉난방 관련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대상을 늘리고 있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확대로 학교의 하드웨어를 개선하는데 쓸 돈이 없는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울에서는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의 내부 온도가 바깥보다 더 낮은 기현상이 벌어지는 곳까지 생기고 있다.

    입김이 나오는 냉기 가득한 교실에서 학생들은 외투의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업을 받고 있다.

    두 시간씩 돌아가면서 순환 난방을 하는 학교의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인 수업, 재미있는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냉난방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학교 화장실의 열악한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은 겨울에 온수가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더구나 학교가 쓰는 교육용 전기료가 크게 오르면서 학교살림을 맡은 교장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름에는 찜통, 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과 같은 교실에서 ‘오고 싶고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육’.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수준별 수업’은 남의 나라 얘기다.

    무상급식을 제외하고, 학생들이 아늑한 환경에서 질 높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은 예정대로 확대의 길을 걷고 있다.
    보수교육감들도 무상급식을 비판하는 일만은 삼가는 분위기다.

    교육계 모두가 눈치를 보는 사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교육계 예산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우는 괴물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학교의 현실이 더 이상 침묵을 방치해도 좋은 만큼 느긋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주목을 끈다.

    전교조를 비롯한 무상급식 찬성파가 내세운 이유인 ‘낙인감'이 그것이다.
    낙인감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명확치 않다.

    1980년대 사회복지학 교재에서 같은 용어가 쓰인 것으로 봐서, 적어도 80년대부터는 복지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나 공무원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낯선 신조어가 언어로써 보편적 지위를 얻은 것은 무상급식 논란 덕분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깡통진보] 교육계는 무상급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로 ‘낙인감’ ‘낙인효과’를 앞세웠다.

    가정형편 때문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어야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이며, 이 상처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그들의 성장과 인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주장은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낙인감'은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전교조와 [깡톹진보] 교육계에게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와도 같았다.

    무상급식에 대한 반론으로 ‘부자급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전교조와 [깡통진보] 교육계는 이 칼을 휘둘렀다.

    혹여라도 무상급식을 비판하는 이들은 어린 아이들이 입는 마음의 상처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비정하고 냉혹한 파렴치한으로 내몰렸다.

    그러면서 전교조와 [깡통진보] 교육감들은 '낙인감'을 없애려면 핀란드와 같은 전면 무상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핀란드를 비롯한 교육 강국들은 대부분 무상급식을 하고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낙인감'의 해소 혹은 방지 때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교조의 주장과 많이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학교무상급식을 운영하는 나라는 핀란드와 미국 등 20개국이다.
    강소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캐나다 등 11개국은 이런 제도를 전혀 운영하지 않는다.

    학교무상급식을 운영 중인 20개 국가 중 사립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 등 단 두 나라뿐이다.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나라들은 국력이 우리만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이 우리보다 낮아서 그런 것일까?
    국민의 민도와 국력 모두에서 우리보다 앞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제한적 무상급식에 만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상급식에 있어 '낙인감'이 보편적인 이유라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제도를 운영 중인 나라들의 제한적 무상급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학교무상급식 ‘NSLP(NAtional School Lunch Program)’의 역사는 길다.
    미국의 급식제도는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SLP는 미 농림부의 FNSP(Food Nutrition Service Program)와 결합해 영양학적 관점에서 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과부와 미국정부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할 때, 미국의 무상급식 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49.5%이다.

    각 주별 상황에 따라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의 비율과 수는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동양계, 히스패닉, 라틴아메리카계 인구가 많은 주에서 무상급식을 받는 비율이 높게 나온다.

    2005년도 미 연방정부 통계를 보면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의 비중은 5년간 14.3%가 증가했다.

    미국 무상급식의 기준은 가구 소득이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연 소득이 $28,665~40,793인 경우는 급식비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28,665 이하 가정은 전면 무상급식 대상이다(2005 U.S Statistics by state).

    눈에 띠는 것은 무상급식 업무처리 절차이다.
    무상급식을 희망하는 학생은 교사와 상담을 할 때 의사를 밝히면 된다.
    학생이 교사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부모의 서명을 받아오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이 과정에서 무상급식 신청여부 등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밀이 보장된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무상급식을 이유로 ‘낙인감’을 받을 염려는 없다.

    실제 미국의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해 본 이들은 이같은 의견에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의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받는 지 여부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해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무상급식으로 인한 '낙인감'이나 학생 사이의 위화감 조성 등은 그 개념조차 낯설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이들 밥 먹일 돈이 모자라서’ 무상급식을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것은 미국의 무상급식이 공립학교만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넉넉한 사립학교 학생들에 대해서까지 급식을 무상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무상급식은 전교조가 반대하고 있는 ‘시혜적’ 무상급식이며, 경제사정에 따른 ‘차등급식’이다.
    그러나 미국의 무상급식 안에 전교조가 주장하는 '낙인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강국인 핀란드의 무상급식은 '낙인감'을 앞세운 전교조를 더욱 머쓱하게 만든다.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한 핀란드는 과거부터 노동력의 확보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장 큰 당면과제였다.
    특히 한정된 인적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확대가 절실했다.

    때문에 핀란드는 국가가 직접 나서 학생들의 밥을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핀란드의 무상급식 역사는 이렇게 특수한 사정 아래서 태동했다.

    물론 핀란드도 처음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핀란드 역시 처음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추진했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일터로 나가는 가정이 늘면서 학생들의 건강이 사회 문제화됐다.
    도시락 대신 점심값을 주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핀란드 전체 학생들의 건강을 약화시켰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이것이 핀란드 전면 무상급식의 출현 배경이다.

    즉, 우리처럼 학생들의 '낙인감' 해소를 위해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것이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의 건강을 국가가 나서 체계적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같은 이유로 의료분야에 있어서도 무상서비스를 도입 확대하고 있다.
    한정된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나서 국민들의 건강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핀란드의 무상급식은 국민들이 내는 엄청난 세금을 바탕으로 한다.
    핀란드는 소득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나라다.
    따라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내는 세금도 더 많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은 수입의 19%, 중산층은 35%, 고소득층은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국민 1인당 내는 세금이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핀란드의 무상급식은 국민들의 높은 세금부담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도, 교육강국 핀란드도 낙인감을 이유로 부자들에게까지 무상으로 밥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미국은 여전히 소득수준에 따른 제한적 무상급식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영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면 무상급식을 하는 핀란드는 '낙인감'이 아니라 국민들에 대한 건강관리 차원에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낙인감'을 이유로 한 무상급식 확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덕분에 학생들은 지금도 꽁꽁 언 교실에서 추위와 싸워야 한다.
    '낙인감'을 앞세운 무상급식이 확대되는 이상 ‘학생 삶의 질’은 그만큼 뒷걸음질 칠 수박에 없다.

    전교조와 [깡통진보] 교육감이 핀란드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은 전면 무상급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이유와 ‘세금급식’이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