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 20부, ‘정치적 범죄’ 판단..일본 측 신병인도 불허 재판부, 국내 판례 없어 고심…국내외 학설 등 자료 검토
  • ▲ 지난해 1월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한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류창 씨(왼쪽)가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 지난해 1월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한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류창 씨(왼쪽)가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어도 정치범인 경우 인도하지 않는다.

    우리 법원이 ‘야스쿠니 방화범’ 류창(劉强)의 신병을 넘겨달라는 일본 측의 요구를 거부하자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20부(재판장 황한식 수석부장판사)는 3일 오후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재판을 열고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한 일본측의 요구를 거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판은 결정이 어떻게 나든 한중일 3국의 외교적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가 내세운 기준은 국제법상의 ‘정치범 불인도’ 원칙이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조약도 이같은 국제법의 기본원칙에 따라 정치범의 상대국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피청구국이 인도 청구의 대상이 된 범죄를 정치적 범죄나 정치범으로 판단할 경우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 한일 범죄인인도조약 제3조(절대적 인도거절)

    우리나라의 범죄인 인도법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류창 인도 재판을 맡은 재판부의 기본적 입장 역시 국제법 상의 대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날 재판의 최대 관심사항은 류창을 일반적인 방화범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치범으로 볼 것인가 하는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만약 재판부가 류창의 야스쿠니 신사 방화를 일반적인 범죄로 본다면 그의 신병은 일본으로 넘어갈 것이 확실했다.

    이미 일본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류창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한일 양국간 체결한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일본 내에서 류창에 대한 재판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가 류창을 정치범으로 본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재판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류창의 야스쿠니 신사 방화를 정치적 범죄로 판단한 것이다.

    (류창의 행위는)일반 범죄보다는 정치적 범죄의 성격이 강하다.
     - 서울고법 형사 20부

    재판부가 류창의 행위를 정치적 범죄로 본 배경에는 ‘일본군 성노예’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일본 정부가 보여 준 태도도 한 몫을 했다.

    재판부는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류창 사건과 유사한 국내 판례가 없어 상당한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재판부는 이와 비슷한 국내외 사건에 대한 해외 판례와 학설 등을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재판부가 제시한 정치적 범죄의 판단 기준은 여섯 가지였다.

    ①범행의 동기가 개인적이지 않고 정치적인지
    ②범행의 목적이 해당 국가의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③범행의 대상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④범행과 정치적 목적이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는지
    ⑤범행의 법적·사실적 성격
    ⑥범행의 수단 혹은 방법의 잔학성
    등이다.

    동시에 재판부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사적 인식과 그 태도, 범죄행위에 대한 류창의 정치적 신념 등도 함께 고려해 일본의 범죄인 인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류창은 일본군위안부 등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과 정책에 분노를 느껴 압력을 가하려고 범행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단체의 재산이지만 국가시설에 상응하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다.
    방화로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가 없었고,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적 피해도 적어 반인륜적 범죄로 볼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중국 사이의 역사적 배경, 정치적 상황,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고려할 때 이 사건은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
    국내법과 국제적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범죄인의 인도를 불허한다.
     
    - 서울고법 형사 20부

    중국 국적의 류창은 지난해 1월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수감돼 형기를 마쳤다.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류창은 2011년 12월26일 일본에서 일어난 야스쿠니 신사 방화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털어놨고, 일본 정부는 이때부터 우리 정부에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류창을 정치범이라며 자국으로 송환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하면서 류창 사건은 한-중-일 삼국간 외교전으로 비화됐다.

    이날 법원의 결정으로 자유의 몸이 된 류창은 곧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