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해야 할 '역사인식 논쟁'

      

  •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역사인식을 정히 결전의 이슈로 삼자고 한다면 좋다. 해보자.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는 것은 그들과 박근혜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 싸움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역사인식 논쟁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범좌파가 1960년대 초부터 일관되게 이런 저런 모습으로 가지고 왔던 종속이론적 역사인식은 그러면 잘 못된 게 아니었나?

     종속이론은 1960년대 초에 폴 바란(Paul A. Baran)의 <성장의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 of Growth)>이란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 일각에 들어왔다. 1980년대 386을 매료 시키던 종속이론의 선구적 이론이었다. 후진국이 아무리 자본주의를 해보았자 신(新)식민지 밖엔 안 된다는 비관론이었다.

    대학생들은 그 비관론을 접하고 적잖이 비관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 보았자 가랑이만 찢어진다는 속담들을 연상했다. 데모를 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구호 중 하나가 그래서 "매판자본 물러가라"였다. 삼성의 한비사건이 났을 때 그런 관점에 대한 확신은 절정에 달했었다. 3공화국이 대일 청구권 자금을 들여왔을 때도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침탈과 한국 경제의 대일 종속에 저항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고속도로를 건설했을 때도,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들은 모두 "안 된다"고 했다. 중화학공업 때도 "배를 만들어 어디다 판단 말이냐?"며 '안 될 일'이라 했다. 그러면서 '민족경제'를 주장했다. 민주화와 통일과 민족경제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에선 수입대체산업도, 대외 지향적 무역입국론도, 보세가공업도, 차관도입에 의한 국가주도 고도성장도, 산업화도, 자동차 조선 제철도 모조리 '매판경제' 박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 '민족' 운운 '자립' 운운 한 북(北)은 쫄딱 망했고, 한국은 G20국가가 되었다. 그들 말대로라면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는 지금 없거나 망했어야 된다. 결과가 이쯤 됐으면 "그 때 우리가 뭘 잘못 예측했다"고 할만도 하련만 그들은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양, 시침 뚝 떼고 입을 싹 씻는다. 지식인이 이럴 수 있나?

    그들은 지금도 그런 역사인식에서 별로 벗어나 있지 않다. 이른바 NL(민족해방론)이 그것이다. 북은 '자주' 남은 '종속' 그래서 '종북(從北)'보다 '종미(從美)가 나쁘다는 식이다. 그들 모두가 다 꼭 이렇게 '최극단'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큰 틀에선 여전히 그런 '구시대적 저항민족주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이런, 오류로 판명 난 역사인식에 대해선 왜 비판적 논쟁이 없는가? 상대방이 "박근혜 역사인식에 문제 있다" 하면 "우리 현대사의 산업화 과정에 대한 너희들의 종속이론적 역사인식은 옳았느냐?"고 왜 대응하지 못하는가? 하긴 새누리당에 대해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럴 생각도, 의지도, 투지도, 인식도 없는 사람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다니...

    국가진로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적, 대외 개방적 발전 처방은 너무나 잘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 쪽 처방은 대한민국의 성공으로 오류였음이 반증되었다. 이게 정작 해야 하고, 해볼 만한 역사인식 논쟁이다.

    대한민국의 성공과정에는 물론 "이제는 시정하고 극복해야 할" 그림자와 그늘이 왜 없었겠는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것에 '대한민국 방식'으로 빛을 쐬어주면 될 일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