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 안타까움 표현에 마녀사냥식 여론조장, 격려에 인색한 세상
  • 솔직히 아쉽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죽일 놈’을 만든다.

    금메달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은메달 소식을 전하면서 안타깝다는 말도 함부로 못하는 세상이다. 과연 박태환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고 스스로 얼마나 금메달을 기대했는지는 솔직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전 국민이 '알아야' 하거나 '인정해야' 할 일은 아니다. 박태환만 노력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았던 것도 아닐테니까.

  • ▲ 마린보이 박태환이 29일(현지시간) 런던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거머 쥔 은메달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연합뉴스
    ▲ 마린보이 박태환이 29일(현지시간) 런던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거머 쥔 은메달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유독 이번 런던 올림픽을 바라보는 여론은 ‘2등’에게 유난스럽다.

    박태환의 400m 자유형 은메달 소식이 보도된 29일, 온라인상에는 ‘은메달이 어때서?’라는 여론이 확산됐다.

    “제발 중계할 때 금메달 못 땄다고 뭐라고 좀 하지마. 방송3사 다 똑같아. 본인들도 선수 생활했으면 기분을 알텐데 격려는커녕 결국 산을 못 넘었네.. 금메달을 놓쳤네.. 무릎을 꿇었네..X소리만 해대고. 민폐쩔어.”

    한 네티즌의 이 트윗은 이날 오전 RT(리트윗) 순위 1위를 줄곳 유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트위터리안들은 박태환의 은메달 소식을 전하면서 ‘안타깝다’, ‘아쉬운’ 등의 제목을 내놓은 언론사와 기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4년 간 노력한 박태환이 은메달을 딴 것에 대해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한다. 어느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운 마음까지 가지지 말라는 건 좀 부담스럽다.

    운동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스포츠맨에게 1등을 하지 않았다고 ‘너도 속상하지? 나도 속상하다’고 말하지 못할 바에는 손에 땀을 쥐고 시청하지도 않겠다.

    ‘안타깝다’고 말하지 못하니 ‘더 잘해라’는 격려도 못한다. ‘2등이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은 ‘1등도 2등도 꼴지도 모두 승리자’라는 거창한 스포츠맨십을 신봉하는 ‘성직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1등을 축하하고 2등을 격려하는 분위기는 우리나라가 한층 선진국에 다가간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반면 문득 생각나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다. 과연 국민들이 박태환이라는 ‘호감형 인물’ 외에 다른 분야의 2등에게도 관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 ▲ 마린보이 박태환이 29일(현지시간) 런던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거머 쥔 은메달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곧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도 이런 의문은 적용된다. 유독 정치인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 언제부턴가 생긴 ‘현 정권은 까야(비판해야) 제 맛’이라는 분위기는 여전히 안타깝다.

    약관의 나이에 세계 신기록과 수영 챔피언을 이루고 수억원의 CF 개런티를 받는 박태환에게 ‘격려’가 필요하다고 외칠 수 있는 ‘관대함’이라면 매일 욕만 먹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도 한번 쯤 ‘잘했어’라는 격려를 주는 국민성도 기대한다.

    박태환을 비판하면 ‘무개념’이고 이명박을 비판하면 ‘개념인’이라는 무조건적인 명제에 선동당한 것을 마치 지성인의 책무로 신봉하는 시대정신에 감히 말한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