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세트 부위별로, 채소는 덤... 단골 늘어 <제일시장>마트에 손님 뺏겨 자포자기...고령화 가속 <인왕시장>
  • ▲ 왼쪽부터 중곡제일골목시장과 인왕시장 ⓒ 양호상 기자
    ▲ 왼쪽부터 중곡제일골목시장과 인왕시장 ⓒ 양호상 기자

    설을 며칠 앞둔 지난달 20일. 제수용품을 정리하는 전통시장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대형마트보다 최대 8만원 이상 저렴하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지면서 상인들은 내심 기대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설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 간에도 온도차가 컸다. 손님들이 몰려와서 ‘설특수’를 톡톡히 누린 시장이 있는 반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한 시장도 있었다.

  • ▲ 지난 1월 20일 오후 4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중곡 제일골목시장은 손님들로 붐볐다. ⓒ 양호상 기자
    ▲ 지난 1월 20일 오후 4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중곡 제일골목시장은 손님들로 붐볐다. ⓒ 양호상 기자

    이날 오후 4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중곡제일골목시장을 찾았다. 노점까지 합쳐 점포수가 143개인 골목형 시장이다. 입구에 있는 점포부터 흥정하는 손님들로 바글거렸다.

    특이한 점은 시장 끝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emart everyday)가 붙어 있었다. 시장 초창기부터 있던 마트를 지난해 7월 이마트가 인수한 것이다.

    마트와 전통시장이 공생할 수 있을까? 중곡제일시장에 있는 상인들에게 묻자 “우리는 마트랑 상부상조하고 있다”고 답했다. 마트와 시장에서 찾는 품목이 다르니 상관없다는 얘기다.

    노점상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최승각(38) 사장은 “아침마다 채소를 가져와서 그날그날 판매하니 마트보다 신선해서 손님들이 많아 온다”고 말했다. “채소나 과일, 생선 이런 건  시장이 싸고, 덤도 많이 주니 포장돼 있는 마트랑은 다르죠. 유제품이나 과자, 공산품은 마트에서 많이 사요. 우리와 마트는 경쟁보다는 공생관계예요.”

    다른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게를 오픈한 한우농장 윤동광(28) 사장도 “요즘 하루에만 100여명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윤 사장에게 장사가 잘 되는 비결을 묻자 “명절을 맞아 초특가 상품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마트는 제한된 한우선물세트를 팔지만 저희는 돼지고기 앞다리살, 등심 등 원하는 부위로 즉석에서 설 선물세트를 만들어주니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설 대목기간인 지난달 14일부터 23일까지 하루에 1억5,000여만원의 매출을 냈다. 설 전날까지 최대 성수기 일주일 매출을 합하면 10억원이 거뜬히 넘는다. 박태식 상인회장은 “우리시장은 이번 설 명절 때 평소보다 3배정도 장사가 잘 됐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이 자체적으로 체질개선에 나섰기에 가능했다. ‘고객이 변하는데 우리도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인회를 중심으로 손님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주차쿠폰과 할인쿠폰을 만들었다. 할인행사나 이벤트가 있을 때는 마트처럼 문자로 단골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상인들이 뭉쳐서 스스로 노력하니 단골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장도 젊어졌다. 주인이 나이가 많아 장사가 어려운 점포들들을 대상으로 세대교체를 했다. “연로하신 상인들의 가게를 젊은이들에게 저렴한 권리금으로 빌려줬어요. 그러다보니 시장이 젊어지고 활력도 넘치게 된 거죠. 지금은 상인들 평균연령이 40대 후반정도 됩니다.”

    시장이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찾아오는 손님 층도 다양해지고 많아졌다는게 박 회장의 자랑이다.

  • ▲ 같은 날 오후 5시경 들린 서대문구 인왕시장은 한산했다. ⓒ 양호상 기자
    ▲ 같은 날 오후 5시경 들린 서대문구 인왕시장은 한산했다. ⓒ 양호상 기자

    반면 이날 오후 5시쯤 방문한 서대문구의 인왕시장은 한산했다. 점포수는 149개로 중곡제일골목시장과 비슷한 규모의 골목형 시장이다. 상인들은 설 제수용품을 가득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물건을 구경하는 수준이었다.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밤도 손질해놓고, 대추며 과일까지 들여다 놨는데 손님이 없어서 걱정이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시장 정문 근처에 있는 마트를 가리키며 “저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돼요. 우리가 물건을 떼와도 소용없어. 다들 마트로 가지 여기로 오겠어요?”라고 되물었다.

    다른 상인도 “예전엔 우리시장도 손님들이 북적북적하고 좋았어요. 몇 해 전에는 그래도 설날엔 장사가 좀 됐는데, 올해는 설 특수마저 없어요. 언제까지 장사할지도 모르겠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시장에 비해 상인들의 연령이 높았다. 이들에게 손님이 없는 이유를 묻자 “시장 근처에 생긴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장에 사람이 없다보니 손님들도 슬며시 곁눈질만 하고 빠져나오는 눈치다.

    인왕시장 상인회는 “상인들이 고령화 되면서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구에서도 빈 점포를 젊은이들에게 빌려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점포를 내주어 젊은 상인들이 모이면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설 대목을 맞아 두 시장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규모의 전통시장이지만 지역적 특성과 마케팅 전략에 따라 흥행여부가 확연히 달랐음을 알게 된다.  

    전략적 판매 품목, 주차, 쉼터 등 부대시설, 마케팅 기법, 홍보 예산 등 전통시장 상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최우선 과제는 우선 뭉쳐서 머리를 맞대고 대형마트와 싸워 이길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다. 

    지자체, 시장경영진흥원, 문화부 등 정부기관의 지원을 지역 대학이나 시민단체 등과 연계하면 훌륭한 문화행사와 마케팅 전략이 나온다. 시장을 문화로 풀어나가고 있는 다른 시장들의 성공사례를 먼저 살펴볼 일이다.

    취재= 박모금 기자 / 사진= 양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