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ㆍ高 '닫힌 입'에 브레이크, 물증찾기 난항박 의장 조사 설연휴 이후로 미뤄질 듯
  •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병목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당원협의회 간부들에게 뿌리라며 구의원들에게 금품을 돌린 혐의로 안병용(54)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이 16일 구속되면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관측됐던 수사가 일시적으로 진척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17일에도 수감된 안 위원장을 소환하는 등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여전히 의혹을 받는 핵심 당사자들의 일관된 부인으로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수사 진도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구속된 안 위원장, 박희태 의장 전 비서 고명진(40)씨 등 의혹의 입구에 위치한 이들로부터 '윗선'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이들의 '닫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안씨는 구속 이후에도 구의원들에게 2천만원의 현금을 건넸다는 혐의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몸담았던 계파인 이재오계가 특정 세력의 음모로 인한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안 위원장이 돈을 돌릴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 아래층의 별도 사무실에서 회계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은평갑 당협 여성부장이었던 김모씨도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은 고씨가 전대 직전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돌린 '뿔테 안경의 남성'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그는 되돌려받은 돈 봉투를 자신이 개인 용도로 쓴 사실 외에는 의혹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급박하게 달려오던 수사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선거 범죄의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수사 관계자는 "예상은 했지만 선거범죄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지금 안씨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거액이 특정인물에 꽂히는 뇌물사건과 달리 소액의 현금이 여럿에게 뿌려진 선거사건은 한쪽이 입을 닫아버리면 수사가 난관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누구도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나마 돈을 받았다는 인사들도 되돌려줬다고만 주장해 실체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안 위원장은 돈을 받았다 되돌려줬다는 구의원들의 진술이 일관돼 사실상 진술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케이스다.

    결국 물증을 찾아야 하지만 이는 자백 못지않게 어렵다.

    검찰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박희태 후보 캠프의 회계장부를 확보해 분석했지만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느 선거처럼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돈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를 장부에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아는 검찰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는 셈이다.

    고씨 등에 대한 이메일 조사에서도 아직 단서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선거 때 사용되는 불법자금은 거의 100% 현금으로 직접 주고받기 때문에 계좌추적도 쉽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고씨나 안 위원장에게 돈 전달을 지시한 '윗선'으로 의심받는 조정만(51·1급)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등 캠프 핵심관련자에 대한 소환도 당장에는 쉽지 않다는 게 검찰 내 분위기다.

    검찰은 애초 박희태 의장이 귀국하는 18일 이전에 관련자 조사를 마치는 등 이번 수사를 속전속결로 끝낸다는 방침이었지만 현재로선 버거워 보인다.

    결국, 정황증거로 고씨나 안씨를 압박해 진술을 이끌어내거나 물증을 찾아 윗선을 파고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됐고, 이는 곧 캠프 최고책임자인 박 의장에 대한 조사 시기도 설연휴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의장을 당장에라도 소환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수사 진척상황이라는 현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내부기류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검찰의 고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