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
    ▲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온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안 교수는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50%를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고, 이어 자신과는 지지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 씨와 만나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서울시장 불출마를 공언해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안겨줬다. 혜성같이 나타난 안 교수의 사례는 한국민들이 기존의 정치권에 얼마나 실망해 있는지, 또 새롭고 참신한 인물의 출현을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안 교수 돌풍을 가능케 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은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좌절하고 실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를 가져온 무상급식 주민투표만 해도 결국 오 시장의 신임투표로 바뀌면서 여야 정치권의 다툼에 31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아까운 국민세금만 낭비한 셈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도 국민들을 농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감 선거 당시 단일화 상대였던 서울교대 박명기 교수에게 “선의로 2억원을 줬다”며 “제가 배우고 가르친 법은 인정이 있는 법이자 도리에 맞는 법” 이란 괴상한 법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니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현 정치권에 대한 깊어가는 불신과 혐오야 말로 안철수 돌풍의 핵심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이제 보수나 진보 모두를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문제에 대한 이념적 차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한 채 권력 확대에만 눈이 먼 권력집단으로 간주한다.

    이런 판국에 혜성같이 나타난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것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년 대선까지 남은1년 여 기간 동안 안 교수가 현재의 경이로운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국민적 기대주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지금까지의 안철수는 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청춘 콘서트’ 의 행사에서 만나본 안철수지만 대통령선거에 뛰어들 경우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여러가지 흠집내기가 시작될 것이고, 특히 표만 된다면 수많은 시체를 밟고 넘어가는 위선자들 틈에 끼여 과연 얼마동안이나 안철수 열풍이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미 벌써 이름 좀 났다 하면 너도 나도 정치판으로 뛰여드는 인사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호소한 신문사설도 눈에 띤다.

    여기서 안철수 교수처럼 미국 정치에 한때 새 바람을 불어넣는 참신한 인물로 기대를 모았던 기업가 로스 페로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페로는 2011년 현재로 34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미국 100대 부자다. 그런 그가1992 년 2월 20일에 성공적인 기업가의 이미지와 능력을 앞세워 대통령에 출마했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대한 실망과 혐오증이 고조됐을 때였다.

    기존 정치권은 너무도 무능한 집단이며, 나라의 장래보다는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력집단이라고 비난하는 페로의 혜성같은 등장은 하루 아침에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페로는 이후 자신을 중도주의자로 강조하면서 공화당의 Ed Rollins, 민주당의 Hamilton Jordan 을 각각 매니저로 두고 ‘United We Stand America’ 를 부르짖었다. 낙태 자유, 총기규제를 지지하는 전통적인 진보적 이념과 환경보호청(EPA)을 없애자는 보수적 이념도 함께 내세웠다. 이런 와중에 그에 대한 지지율은 한때 39%를 넘었다. 당시 부시는 31%, 클린턴은 25% 였다.

    하지만 기업에 성공한 최고 경영자들의 공통점인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페로의 성격이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그의 고집에 못이겨 공화당의 Ed Rollin 이 사표를 냈고 민주당의 Jordan도 사표를 냈다. 그의 인기는 25% 로 떨어졌다.

    페로의 진짜 몰락은 첫번째 대통령 후보 토론 때였다. 페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던 차여서 시청률은 매우 높았다. 이 토론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에 반대하는 페로의 논리는 궁색했다. 그 당시 57% 의 미국 여론이 NAFTA 를 지지했다. 결국 경험 많은 부시와 그동안 정치판에서 세련된 빌 클린턴 앞에서 너무도 초라한 모습을 보여 그의 인기는 한방에 39% 에서 7.9% 로 하락했다. 페로를 성공한 기업가로 볼 때와 미국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 후보로 봤을 때와는 너무도 차이가 심했던 것이다.

    결국 1992년의 대통령 꿈은 18.9%(19,741,000 표)란 개표 결과로 나타나면서 실패했고, 1912년 이후 최초로 나온 제 3당 후보는 이렇게 해서 사라졌다. 페로는 1995년에 개혁당 후보로 대통령에 다시출마했지만 후보간 토론에도 끼지 못하게 된 아픔을 안고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거듭되는 여야 정당의 정치싸움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참신한 인물을 갈망하지만 막상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안철수 교수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더욱이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더 초라해 보일것이다.

    한나라당의 공천은 이미 물 건너 갔고 결국 민주당 또는 야당 단일화에 안 교수가 공천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한번 해 볼만 하지만 기득권 때문에 공천 자체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전혀 경험이 없이, 정치판에서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 출마하는 건 위험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리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자칫 안 교수에 대한 높은 인기가 페로처럼 하루아침에 신기루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