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일부장관과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실명 거론하며 타킷으로 제시
  • 北통일전선부, 현인택 前통일부 장관 '제거지령' 내려

    반제민전 "현인택과 같은 반역배들을 지체 없이 들어내야"

    金泌材

  • ▲ 구국전선 홈페이지 화면ⓒ
    ▲ 구국전선 홈페이지 화면ⓒ

    북한의 대남(對南)공작조직인 통일전선부가 산하 對南선동 기구인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을 통해 현인택 전(前)통일부장관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에 대한 ‘제거지령’을 내렸다. 
     
    ‘반제민전’은 16일 ‘특등대결광을 제거해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현 집권당국이 대세의 흐름에 배치되게 극악한 대결광신자들을 계속 싸고돌면서 반북대결정책을 끈질기게 추고해 나서고 있다”면서 ‘극악한 대결광신자’로 현인택 前통일부 장관을 지목했다. 
     
    ‘반제민전’은 이어 현 前장관이 최근 대통령 통일정책 특별보좌관으로 기용된 데 대해 “통일이라면 알레르기 환자처럼 발작을 일으키며 미쳐 날뛰는 현인택에게 무슨 통일정책 특별보좌관이라는 너울이 필요한가”라며 “특등 대결광 현인택과 같은 반역배들을 지체 없이 들어내야 한다”고 선동했다. 
     
    앞서 '반제민전'은 14일 ‘반북대결분자를 들어내야’라는 제목의 논평에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면 청와대의 대외전략비서관 김태효를 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을 따라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당한 말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핵, 개방, 3000’을 고안해내고 미국의 사타구니에 붙어 그에 대한 지지와 협력까지 구걸 한 특등 주구가 바로 김태효다. 남북관계에 좋은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든 두렵지 않다면서 반북대결을 공공연히 외치며 돌아치는 김태효와 같은 자가 청와대의 대외전략비서관의 벙거지를 쓰고 있으니 어찌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겠는가.”
     
    논평은 이어 “주구는 하루빨리 제명하는 것이 상책이다…(중략) 김태효와 같은 반역배들을 민족명부에서 들어내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반제민전’의 정체
    통혁당 해체이후 조직된 대남(對南)선전선동 기구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은 主體思想(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여 남한혁명을 위한 당면 3대 투쟁목표인 ‘반미자주화투쟁’(주한미군철수), ‘반파쇼민주화투쟁’(남한 내 친북정권 수립), ‘조국통일투쟁’(연방제통일) 등을 수행하는 통일전선부 산하 前衛組織(전위조직)이다. 
     
    김일성은 1961년 9월11일 개최된 제4차 조선노동당 대회에서 남한에서 4.19라는 革命的(혁명적) 정세가 조성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남한 혁명으로 유도하지 못한 근본요인이 남한 내 ‘혁명적 당(黨)’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남한 내 지하당 구축을 강조하는 교시를 내렸다.
     
    1961년 당시만 해도 북한이 승승장구할 무렵으로 제4차 黨대회에는 중국 공산당의 黨중앙 총서기인 鄧小平(등소평), 소련의 공산당 이론가 수슬로프 등이 참가했었다. 당시 黨대회에서는 對南(대남)공작의 전술적 전환을 모색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졌다. 여기서 북한은 남조선 혁명의 성격을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으로 규정하고, 이 대회를 통해 남한에서 ‘지하당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하당 조직’이란 남한사회 저변에 숨어서 정치(反정부·反체제 운동), 경제(노동운동), 사회문화(계급의식 고취·反美·親北 문화 조성) 분야에서 非合法(비합법), 非公開(비공개)를 원칙으로 운동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지하에 숨어야 하는 만큼 핵심으로만 구성되는 두뇌조직이 지하당 조직이다. 
     
    어느 정도 사회가 이완되면 半(반)합법, 半(반)공개로 전환하며 정세가 완전히 유리하게 전개되면 비로소 합법, 공개조직으로 변신하여 각종 단체 이름을 걸고 사회에서 대중적 활동을 한다는 것이 북한의 對南革命(대남혁명) 전략이다. 
     
    노동당의 이 같은 전략에 따라 북한의 대남공작(對南工作) 지도부는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을 포섭, 이들을 중심으로 남한 내에 새로운 형태의 독자적인 혁명당으로서 통일혁명당(통혁당)을 결성할 것을 지령했다. 그 결과 1964년 3월15일 ‘통일혁명당 결성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통혁당 주모자인 김종태는 운수업으로 위장해 통혁당의 조직을 주도하면서 前남로당원·좌파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했다. 
     
    이들은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해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하려 했으나 공안당국에 의해 일망타진됐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된 인원은 총 158명이다. 이들 중 73명이 송치(23명 불구속)됐는데, 김종태는 1969년 7월 사형이 집행되고, 이문규 등 4명은 같은 해 9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공안당국은 통혁당 일당을 검거하면서 무장공작선, 고무보트, 무전기, 기관단총, 수류탄 7개, 무반동총 1정과 권총 7정 및 실탄 140발, 12.7mm 高射銃(고사총) 1정, 중기관총 1정, 레이더 1대와 라디오 수신기 6대, 미화 3만여 달러와 한화 73만여 원 등을 압수했다. 

    이후 북한은 통혁당 再建(재건) 공작에 주력하던 중 김종태가 처형된 직후인 1969년 8월25일 대남(對南)흑색방송인 ‘남조선 해방 민주민족연맹방송’을 통해 통혁당 창당선언문과 강령을 발표하며 남한 내 지하당인 통혁당이 실제 하는 것처럼 선전했다. 
     
    이후 1970년 6월1일 통혁당 중앙위에서 운영한다는 ‘통혁당 목소리 방송’이라는 對南흑색방송을 송출하기 시작, 20여 년 동안 對南혁명전선에서 활동했다. 북한은 1985년 8월8일 ‘통혁당 목소리 방송’을 통해 ‘통혁당 중앙위’가 黨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개칭했음을 보도했다. (‘북한연구소’ 인터넷 홈페이지 사전검색 인용)
     
    북한은 또 ‘통혁당 목소리 방송’을 ‘구국의 소리방송’(방송의 실제 발신지는 황해도 해주 남산)으로 개칭하게 됐음을 보도했다. 즉 통혁당이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새로운 대남혁명(對南革命) 전위조직인 한민전이 공식 출번한 것이다. 
     
    한민전의 태동으로 남한 내 좌익(左翼)운동권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비밀리에 반입된 북한 관련 서적 및 복사본을 통해 학습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구국의 소리방송’의 김일성대학 방송강좌, 주체사상교양강좌, 정치철학강좌 등 소위 ‘운동강좌’를 직접 청취해 주체사상 및 남조선 혁명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했다. 
     
    남한 좌익(左翼)들은 이 시기 북한방송 청취내용을 수록한 지하 간행물을 제작-배포해 주체사상(主體思想)과 ‘한국사회변혁운동론’(NLPDR)을 급속히 확산시켜 오늘날의 주사파(主思派)를 형성하게 됐다. 
     
    한민전은 인터넷 사이트인 ‘구국전선’(www.ndfsk.dyndns.org)을 운영하며, 남한 내 친북좌익(親北左翼) 운동권을 지도해오다가 2005년 3월23일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다. 
     
    ‘반제민전’은 그 전신인 통혁당이 출범한지 20년만인 1985년 ‘한민전’으로 개명됐으며, ‘한민전’ 출범 20년만인 2005년 ‘반제민전’으로 개명됐다. 이는 북한이 대남혁명(對南革命)-연방제 적화(赤化)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맞게 명칭을 바꾼 것이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