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만큼 공포스런 내용을 천상의 소리로
  • 프랑스 문화부 후원으로 한국에서 초연된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1794년 대혁명인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는 내용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초로 불리는 프란시스 플랑(francis poulenc)의 걸작으로 1957년 라 스칼라에서 초연 후, 프랑스 아비뇽 오페라극장, 독일의 슈트가르트와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극장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던 작품으로 이번에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했다.

    수 백년 전 유럽 분위기는 캐톨릭 종교에 반하는 이야기는 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만큼 종교에도 왕권 못지않은 절대적인 권한이 있었다. 근세로 넘어오자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는 시대로 바뀌는데 그런 역사의 변화를 배경으로 독일 여류작가 폰 르프르(Gertrud von le Fort)는 소설‘사형대에 선 마지막 여인’이라는 소설을 쓴다. ‘까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바로 이소설을 각색 한 것으로 오페라보다 영화나 연극으로 먼저 검증된 작품이다.

    원래 귀족의 딸인 여주인공 블랑슈는 현실도피 방법으로 어렵게 아버지를 설득해 수녀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부딪쳐 종교단체 금지라는 극약 처방 때문에 수녀원에서 순교를 해야 한다. 순교라는 성스런 의식이지만 죽음이 두려웠던 블랑슈는 다시 도망쳐서 자기 집을 빼앗고 부친을 죽인 혁명가들의 하녀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그녀를 구해보고자 원장수녀님이 설득하지만 끝내 수녀원으로 돌아오길 거절한다. 하지만 카르멜 수녀회에도 그녀 같이 두려움에 순교를 결정하는 무기명투표에서 반대 한 수녀가 있어 만장일치는 실패한다. 얼마 후에 원장 수녀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은 그녀는 결국 15명의 수녀들과 함께 단두대에 선다.

  • 혁명이 보여주는 무자비한 공포는 그들을 따르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종교로 무장한 성스러운 순교라 해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갖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수녀들이 한사람씩 처형을 당하는 바로 그 16번의 단두대 칼날 소리마저 모더니즘 장르로 섬뜩함인지 독특한 아름다음인지 관객이 직접 느껴봐야만 한다.

    프랑스 못지않게 우리나라에도 순교의 역사에 곡절 많은 성지가 전국에 여러 곳이다. 대표적인 기독교인 마을 사람을 전부 교회에 가두고 죽였던 기독교의 재암리 순교사건, 지금은 멋진 관광지 처럼 바뀌었지만 카톨릭의 해미성지는 수천명이 순교의 이름으로 처형당했다. 그 장면을 지켜본 회화나무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성지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이 오페라처럼 그 역사의 의미를 전해 주고 있다.

    프랑스 최고의 연출가 스타니 슬라스 노르디는 수녀들의 단조로운 생활을 매우 절제된 단순미로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하얀 수녀복으로 꽉 찬 하얀 무대에 파란색 귀족복장의 블랑슈 오빠와 까만 사제복의 신부가 무대를 한 바퀴씩 돌고 나가면 마치 하얀 도화지에 파란 잉크나 까만 잉크가 떨어져 흡수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수녀들이 하얗게 흩어졌다가 다시 일렬로 나란히 서있는 모습도 마치 여신이 강림하여 자체 분열한 듯한 신비로운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 갑자기 혁명군이 아주 새 빨간 복장으로 우르르 나타나 무대를 점령해버렸다. 혁명군들의 손에 들려있던 곡팽이, 낮, 갈퀴 등 농기구나 몽둥이를 무기로 무장한 것을 눈여겨보면 혁명군은 지식인이 아니던가 혹은 무지한 행동임을 암시 하는 식으로 프랑스 국기의 은유적 표현인지 파란 하얀 빨강 등 단 몇 가지 색만 가지고도 무대를 강열하게 연출했다.

    여신들은 블랑슈에 소프라노 아닉 마시스(Annick Massis)의 감정표현 중 두 번 정도 살짝 걸림은 표시 안나게 넘어갔고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나란히 개스팅 된 박 현주의 공연을 못 본 것은 아쉬웠다. 단 한명의 반대자 였던 콘스탄틴 수녀 소프라노 강 혜정씨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훈련 못지 않게 유전자 기여도가 큰 느낌이었다.

  • 그 외에도 크루아시 수녀원장엔 메조소프라노 실비 브뤼네(Sylvie Brunet), 라두안 수녀원장 소프라노 임 세경, 마리 수녀부원장 메조소프라노 정 수연, 마틸드 수녀 메조 소프라노 김수영, 쟌느 수녀 메조소프라노 김지선, 혁명군 테너 이재욱, 드라포스 후작이며 장교역에는 바리톤 송기창, 사제에 테너 서 필, 그 외역에 바리톤 조병주등 호화배역이 관객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사했다.

    오페라에서 신부님이 신부복조차 못 입고 사복으로 카르멜수녀원을 찾아와 숨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일부 캐톨릭 신부들이 떼로 일어나 국가정책에 반대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현실은 오히려 종교가 정치를 탄압하는 시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집단이 ‘야외 예배’라는 명목으로 지방 곳곳에 있는 글로벌기업 생산현장을 순례하며 국정에 바쁜 분들 흉내 내고 선물 한아름 씩 안고 오는 종교인들 모습도 떠올랐다.

    심지어 이미 세상 떠난 종교지도자의 아들이 그 뜻을 받들어 프랑스 혁명군 같은 일을 꿈꾸고 전을 순례하면서 백만 민란을 선동하는 현실이다. 여러 번 입각 제의를 거절 했다는 그의 직업은 배우가 아니고 지금도 종교인을 학살하고 수백만을 굶겨 죽이는 악마의 변호사이거나 보좌관이 아닌가 생각됐다. 관공서에서 열변을 토하며 연설하는 것을 보고 장소나 내용모두 정말 자유대한민국임을 실감했다.

    ‘까르멜 수녀들의 대화’ 오페라 관객의 특이한 점은 수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내용이어서 인지 수녀 수백 명의 관람이 있었다. 출연한 수녀의 대사 중 ‘불행은 남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현대인들은 꼭 한번 볼 만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