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제기 근거 있어…공무 비판은 표현자유 넓게 인정"
  • 서울고법 민사1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26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BBK 사건'을 수사했던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당시 수사팀 9명이 김경준씨의 변호인이던 김정술ㆍ홍선식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최 부원장 등이 정봉주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을 상대로 낸 소송도 역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김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회유ㆍ협박했다'는 김씨의 발언을 전달했으며 정 전 의원은 `이명박 후보와 김씨가 공동운영했던 LKe 뱅크가 BBK 지분을 100% 소유했다는 내용의 메모가 수사 과정에서 누락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수사팀은 "변호인이 사실과 다른 김씨의 일방적 주장을 확인 없이 공표해 수사팀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적법하게 수사했는데도 `검찰이 메모를 감췄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소송을 냈고 1심은 김 변호사 등이 3천50만원을, 정 전 의원이 1천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고법 재판부는 그러나 "수사팀의 회유가 있었다는 김씨의 자필 메모지가 보도됐고 김 변호사는 그 가족이 제시한 녹취록 등을 확인하고 김씨를 직접 만나 마찬가지 사실이 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동일인이 같은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얘기했고 메모까지 있다면 검토할 여지가 있고 의혹을 제기할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의 발언을 전하는 과정에서 김 변호사가 자신의 판단이나 사건의 진실에 관한 결론을 성급하게 제시하지 않았으며 변호인으로서 그를 대변해야 하므로 회견은 정당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회견 내용이 검사의 직무인 수사에 관한 것이고 공직자의 직무집행에 관한 비판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경우가 아니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완화돼야 한다"며 "의혹 제기를 경솔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상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정 전 의원에 관해서는 "검찰은 김씨의 메모를 수사결과를 지지하는 근거로 삼았지만 정 전 의원이 확보한 메모에는 이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었고 이에 따라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한 게 근거 없는 행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한편 `BBK 의혹'을 제기했던 김씨는 옵셔널벤처스 주가를 조작하고 회삿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9년 5월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