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노후 장비로 30대 소방관 순직네티즌 청원 빗발, 근로 여건 개선해야
  • 지난 주 광주광역시에서 아파트 외벽에서 고드름 제거 작업을 하던 30대 소방관이 숨진 안타까운 사고가 알려지면서 소방공무원들의 근로 환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진 예산 부족으로 인한 노후된 장비를 교체하지 못하는 실정과 함께 아직도 살인적인 2교대 근무에 따른 소방관들의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다.

  • 24일 다음 '아고라'에는 '소방관은 국민을 구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소방관을 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글을 올린 '119구급대원'은 "순진한 이모 소방교(36)는 만 3세, 1세 두 아들을 둔 아빠다. 소방서에 돈이 없어 장비가 노후돼 본인의 생명을 놓는다면 이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네티즌들은 저마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로 형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방관과 함께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관의 경우 국가직으로 분류, 예산을 중앙정부(행안부)로부터 지원받고 현재 가장 격무부서로 꼽히는 형사팀까지 대부분 4교대 근무로 개편됐다.

    하지만 소방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예속된 ‘지방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예산 지원이 턱없이 모자라 장비 확충은 물론 인력 수급에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 현장직들은 여전히 하루 24시간을 근무하고 하루를 쉬는 비정상적인 2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실정이며 그나마 비번인 날에 긴급 사건이라도 터지면 꼼짝없이 2~3일간 눈 한번 붙이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이천 화재 참사에 출동했던 이수호 소방관은 60시간 연속 근무하다 결국 뇌출혈로 쓰러져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후 소방방재청은 전 직원 3교대 근무로 개선하고 소방 장비 교체에 나서겠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현장 직원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들의 손에는 고무줄 내구연한을 가진 믿지 못할 장비가 쥐어져 있다.

  • ◇ 평균수명 58세, 소방관의 목숨이 불타고 있다.

    공무원 중 가장 빨리 죽는 직업은? 정답은 소방관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방관의 평균수명은 58.8세. 정무직 공무원(72.9세)보다 15년이나 빨리 죽고 교육직 공무원(67.7세), 법관·검사(66.2세), 국가일반직 공무원(65.3세), 별정직 공무원(65.2세) 등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턱없는 수치다.

    소방 공무원 정년이 57세인 것을 생각하면 퇴직한 소방공무원들은 평균 2년 안에 사망하는 셈이다. 매년 300명 이상이 다치고 6명 정도가 순직한다. 하지만 생명수당은 월 5만에 불과하다. 하루에도 수십번 연출되는 응급상황에 몸이 남아날 날이 없지만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소방관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만성 질환에 대해선 별다른 지원조차 없다.

    임용된 지 5년이 안 돼 그만두는 소방관의 비율은 5명 중 1명꼴이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미국에서는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사나 과학자와 함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소방관 1인이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때마다 그들의 수명은 타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 불 끄는 일보다 심부름이 더 많아

    사실 이번 광주에서 벌어진 사고가 알려졌을 당시 네티즌들은 “왜 소방관이 고드름을 제거하느냐. 시민 각자가 해야 하는 일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소방관들이 1년간 출동한 사건 중 화재현장에서 벌인 구조 활동은 12.3%에 불과했다.(2010년 국정감사 자료 기준)

  • 대부분 벌집이나 고드름을 제거하거나 지붕 위에 올라간 개나 고양이를 구출하는 사례(39.9%)가 많았다. 특히 동물 구출 건수는 지난 ‘07년 18%에서 ’08년 21.4%, 09년 28.3% 등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심야 시간 주취자들이 귀가를 위해 119를 호출하는 사례, 길을 가르쳐달라며 응급차를 빌려타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여기에 소방법에 따라 관내 건물을 관리하고 지도해야 하는 행정적 업무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소방방재청은 불을 끄고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주 업무인데 부가적인 업무가 너무 많다”며 “차라리 소방방재청 이름을 심부름 센터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화재 연기보다 무서운 마음의 상처

  • 소방관들은 화마가 덮친 사고 현장보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이후 겪는 정신질환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대답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심각할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조차 어렵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서울 종로소방서 한 구조대원은 “사고현장에 가서 참혹한 현장을 보거나 자살한 사람을 보게 되면 많은 충격을 받는 게 사실”이라며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많은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마련돼 있지도 않고,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 그냥 참고 지낸다”고 했다. 

    이 구조대원의 말처럼 다친 소방관을 위한 병원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군인은 물론 경찰병원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소방관들이 공무 중 부상을 당하면 소방병원이 아닌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더 큰 문제는 공무 중 불상사로 순직을 하더라도 군인과 경찰과 대비할 때 형편없는 예우를 받는다. 이것 역시 지방공무원법에 따른 예우이기 때문에 국가직(군인, 경찰)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