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고아 출신으로 미국에 입양돼 성공하고 암과 투병하면서도 북한 고아를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는 한상만(65)씨의 이야기가 미국 언론에 또다시 소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AP통신은 29일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설립해 북한과 캄보디아, 탄자니아 등의 고아를 돕는 활동을 해온 한 씨의 인생역정을 장문의 기사를 통해 소개했다.

    한 씨의 이야기는 지난해 2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AP는 한 씨가 "고아로 자란 성장배경을 되살려 외국의 고아들을 계속 돕기를 원하고 있으나 그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씨는 2002년 가슴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다가 골수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들은 3∼5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내렸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AP통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삶의 목표와 살아야 할 이유를 일깨워줬다"고 논평했다.

    한 씨는 암 진단 후 딸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모든 재산을 처분해 로스앤젤레스(LA) 인근 패서디나에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만들었다. 슈나이더는 그를 입양했던 미국인 양아버지의 이름이다.

    한 씨는 한국전쟁 피난길에 가족과 헤어진 후 여섯살의 나이로 구걸로 연명했다. 12세 때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한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슈나이더 미 미네소타대 교수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당시 서울대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슈나이더 교수는 한 씨의 사연을 듣고 교육비를 지원했고 4년 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를 데리고 갔다.

    한 씨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화학회사 듀폰에 취업했고 몇년 후 화학제품 무역회사를 창업해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그러나 골수암 판정을 받은 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일, 바로 다른 고아를 도움으로써 그의 양아버지를 기리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5만 달러를 출연해 재단을 설립했다.

    한 씨는 단순한 북한 고아 지원사업에 그치지 않고 미 의회에서 `탈북고아 입양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열심히 로비활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것은 매일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가장 위대한 약이기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