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①  

     「조선으로 돌아오실 겁니까?」
    불쑥 학생 하나가 물었으므로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곳은 도쿄, 유학생들과 크리스찬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이다. 방 안에는 10여명의 간부급 유학생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나에게 시선을 준채로 조용하다.

    나와 함께 한국을 떠난 감리교 감독관 해리스는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하나씩 눈을 마주쳤다. 조소앙, 김정식, 최상호, 이인, 최두선, 송진우, 안재홍 등 모두 내 시선을 받고도 먼저 떼지 않는다.

    내 강연은 기독교의 전파와 그에 따른 민중의 교화에 제한되었다. 감독관 해리스가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은 도쿄, 일본제국의 수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조선인 유학생으로 일거수일투족이 일본인의 감시 하에 있다.

    이윽고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돌아갈거요.」
    「감리교 총회가 끝나면 돌아오신단 말입니까?」

    또 다른 학생이 물었으므로 나는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박사님, 조선은 언제 독립이 되겠습니까?」

    마침내 내가 기대했지만 우려도 했던 질문이 나왔다. 다시 방안이 조용해졌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내일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가겠지만 이들은 남아있다. 이 질문과 대답이 일본 당국에 보고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정색하고 말했다.
    「믿으시오.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누군가가 대답했고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을 때 내 좌우로 조소앙과 송진우가 붙었다. 오늘이 그들과의 마지막 모임이다.

    그때 조소앙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박사님, 우린 어떡하면 좋습니까?」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밤거리의 불빛에 반사된 조소앙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나는 길게 숨부터 뱉고 대답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네.」

    조소앙과 송진우가 내 옆으로 딱 붙었다. 한마디라도 흘려듣지 않겠다는 몸짓이었으므로 나는 목이 메었다.

    「그리고 국제정세도 우리에게 불리하네. 미국과 영국이 일본을 지지하고 있어.」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위축되어 있다.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힘을 길러야 돼. 희망을 잃지 말고, 절대로 포기하면 안되네.」
    그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 다짐하듯 하는 말이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려고만 이들이 모인 것이 아니었다. 조국의 독립을 상의하는 모임으로 크리스찬 유학생 모임만큼 적당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요코하마에서 미국행 배에 올랐다.

    「리, 조선은 발전할거요.」
    난간에 나란히 서서 떨어지는 요코하마항을 바라보던 해리스가 불쑥 말했다. 내 시선을 받은 해리스가 빙그레 웃는다.

    「조선이 발전하려면 일본의 등에 업히는 수밖에 없소. 그렇지 않소?」
    나는 웃어만 보였을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해리스는 조선이 자력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믿는 외국인이다.
    그는 조선 왕실의 부패, 왕의 무능, 간신과 탐관오리의 실상과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잘하는 민중의 속성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외면한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러나 이 박학한 미국인이 간과한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조선인의 자존심이다. 언제부터인가 조선인은 대국(大國)인 청(淸)도 뙤국놈이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