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Lucy 이야기 ②  

     다음날 오전, 나는 고지훈과 함께 호텔 커피숍에 앉아 최영선을 기다렸다.
    상황을 설명 해주었더니 고지훈이 30분만에 호텔로 달려와 준 것이다.

    오전 10시 45분, 약속시간은 11시였으니 아직 시간이 남았다.
    커피잔을 든 고지훈이 머리를 돌려 옆자리에 앉은 나를 보았다. 눈빛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감정의 교류만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이 합쳐진 후에야 형성이 된다.

    「루시, 난데없이 이승만 암살 기도 사건이 나타나는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지훈의 표정은 호기심이 드러나 있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수기는 이승만 박사가 조국으로 돌아온 1910년 10월 10일로 그쳐있거든요? 그래서 1947년의 암살 미수 사건이라니 37년을 건너 뛴 상황이 됐네요.」

    웃음 띤 얼굴로 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수기를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궁금해요.」
    「그 당시에 이승만 박사는 공산당의 적이었지요.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남북한 전체가 김일성 일가의 왕국이 되었고 지금도 그 체제가 존속되고 있을 테니까요.」     

    고지훈의 유창한 영어가 이어졌다.
    「아마 공산주의 암살단의 암살기도 사건일 것입니다.」

    그때 커피숍 입구로 사내 하나가 들어섰는데 6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흰 머리에 마른 체격이었지만 허리가 곧고 어깨도 펴졌다.

    멈춰선 사내가 안을 둘러보더니 곧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다 내 옆에 앉은 고지훈을 보고나서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졌다. 내가 일행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내가 손을 들어 보였다. 사내가 최영선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영선은 제 나이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1947년에 암살자로 활약했다면 아들은 60대나 70대쯤 되었을 것이었다.

    사내가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으므로 고지훈도 긴장했다. 고지훈도 나하고 같이 사내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시양이십니까?」
    다가 선 사내가 영어로 물었으므로 나는 고지훈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제가 루시 존스입니다.」
    「제가 전화했던 최영선입니다.」

    나는 사내와 악수를 나누고는 고지훈을 친구로 소개했다. 사내는 고지훈과도 악수를 했지만 경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런 전화를 받으셔서 놀라셨지요?」
    「네, 하지만 흥미가 일어났어요.」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더니 사내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김동기씨한테서 갑자기 연락을 받고 서울에 온 길이니까요.」
    「그럼 한국에 계신 것이 아닌가요?」
    「전 시카고에서 삽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자죠.」

    그러더니 사내가 다시 눈웃음을 쳤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이죠. 저는 1948년에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이 사내는 올해로 62세가 된다.

    나와 고지훈을 훑어본 사내가 말을 잇는다.
    「이 정보가 그런 값어치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난데없이 김동기씨한테서 제의를 받고나니까 지금도 얼떨떨합니다.」

    내 시선을 받은 사내가 이번에는 쓴웃음을 짓는다.
    「하긴 이승만 박사 연구에는 참조가 될지 모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