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수, 군대 안 간 게 '중도‘?  

       한나라당 안상수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이제 중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건 9월 30일 그가 한나라당 제10차 전국위원회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보수만 가지고는 우리의 의견을 확대할 수 없다"며 "중도로 나가서 외연을 확대하고 다른 세력을 포용해 차기 정권재창출을 이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병역 기피자들의 소굴만 가지고는 우리의 의견을 확대할 수 없다. 국민의 3대 의무 중 하나인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국민여론으로 나아가서 외연을 확대하고 다른 세력을 포용해 정권 재창출을 이뤄야 한다.” 

     올바른 의미의 보수니 중도니 진보니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도덕성’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보수, 중도, 진보는 경제 복지 분배 정책상의 약간씩의 강조점의 차이를 드러낼 뿐, 그것으로 나라의 존망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상호배제적 관계에 있지 않다. 그러면서, 그 각각은 다 도덕성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 받는다. 

     안상수는 헌법질서하의 보수 중도 진보도 마치 정책수단상의 차이를 넘는 이질적(異質的) 대립관계에서 끊어져 있다는 양, 보수를 떠나 중도로 넘어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 말, 20세기적인 분류법일 뿐이다. 오늘날엔 유럽에서 보듯, 자유민주 헌법질서하의 보수 중도 진보는 거의 섞이고 중첩되어 있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은 경제정책에 있어 시장경제 쪽으로 성큼 다가와 있고, 보수당, 기독교 민주당 등은 복지 쪽으로 많이 이동해 있다. 진보는 이미 시장을 전제하고 있고, 보수는 이미 복지를 내포하고 있다. 보수 중도 진보의 경계를 굳이 무우 베듯 자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에서 “보수를 떠나 중도로 가자”고 했을 때 그것은 세월이 지나 보수 진보의 지형(地形)이 변할 줄을 모르고 산 사람의 말밖에 안 된다. 우리의 경우도 고전적 ‘야경(夜警)국가론’이나 국가개입 만능주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있다 하더라도 주류일 수는 없다. 안상수는 그걸 모르는지 아니면 저 혼자 안다고 생각하는지, 보수 중도 사이에 구태(舊態)의 이념적 분류법에 따라 첨예한 단절선을 긋고 있어 웃긴다. 

     우리의 경우 물론, 보수를 강자(强者) 일변도의 것으로 몰아서 적(敵)으로 치부하는 발상이 자칭 진보나 자칭 중도(제대로의 중도가 아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뭘 모르는 부류의 속설(俗說)이거나, 시대착오적 극좌파의 비방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마치 ‘보수=극단파’인양 색칠해서 보수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예 도망치려는 객쩍은 짓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국토방위의 의무를 과연 남들처럼 제대로 이행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문제다. 안상수 군, 당신 군대 갔다 왔어? 안 갔으면 어떻게 돼서 안 간 거야?  

     우파 정권 재창출이 아무리 급박하다 할지라도 그 전에 병역 의무를 포함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어긴 부도덕한 자들부터 확 쓸어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 진영이 살고 이기는 길이다. 

    <류근일 /본사고문,언론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