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동분자' 비판회 피고인 자리

    늦잠에서 깨어나니, 해는 중천에 높이 올라와 있었다. 아침 밥을 지어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공산당원이며 민주청년동맹원인 김명훈(金明薰)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인민학교직원실에서 민청(民靑) 회의가 있어 부르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심이 들어 “일요일인데 무슨 민청회의요?”했더니, 그는 시치미를 떼고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민청부장들의 인사이동회의 같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와 함께 직원실로 갔다. 최상권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회의가 시작 되었다. 정상적인 회의가 아니라 반동분자에 대한 비판회라는, 일종의 인민재판 이었다. 그들은 나를 피고인 자리에 앉혔다. 비판회는 검사가 입회한 가운데 민청맹원들이 하는 제 1부와, 여기에 직장동맹원들과 부녀동맹원들, 그리고 당 간부들이 추가되어 하는 제 2부로 이어져서 진행 되었다.

    출입문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보안대원이 보초를 섰다. 최상권이 나의 범죄사실을 읽어내리며 고발할 때는 모두 숨을 죽이며 이를 경청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이북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내가 교원양성소 담임 학생들에게 김구와 이승만의 민족반역규탄교육을 할 때에 사족을 붙인 것과, 5학년 교실 게시판에 민족반역자타도의 그림을 오래 붙여놓지 않고 학생들이 그린 사생도로 바꿔 붙인 것이 문제가 됐다.

    그들은 손을 들어 의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후 일어나서, 나를 김구와 이승만이 파견한 악질테러분자·반동분자·민족반역자로 몰아세우며 무자비한 처단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도와주려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는 백응년(白應年) 선생이었다. 백 선생은 부모, 형제들과 함께 만주에서 살다가 제2차세계대전 후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으며, 집이 가난해서 끼니를 거를때가 많았다. 하루는 아침을 굶고 출근길에 나섰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져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나는 성실한 그와 제일 가깝게 지냈으며, 단둘이 있을때면 그가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우선 이대용 동무가 오늘날까지 가난의 서러움을 가슴 아프게 느끼면서 자라왔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대한 과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다음 이번의 정치적 오류는 잘못된 것이지만, 여러가지 정상을 참작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 '젊은이 타도' 북조선 슬프고 원망스러워

    그러나 이어지는 열성당원들, 아부당원들의 부정적 발언에 가려져 그의 발언은 묵살되고 말았다. 백 선생의 말대로 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왔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공부를 하는 꿈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러한 젊은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타도해 버리는 북조선 사회가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도마 위에 올려진 이 몸. 아! 이것이 나의 운명인가 하는 회한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젯밤에 38선 이남을 향해 뛰지 않은 것이 후회 막급이었으나 이제는 과거 지사,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기구한 운명에 순종하면서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손에 죽어야 하는 것인가? 열성분자들이 차례로 손을 들고 일어나서 열을 올리며 떠들어대는 소리들을 귓등으로 흘려 보내면서, 내가 취하여야 할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가를 곰곰 궁리해 보았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이 기구한 운명에 대한 결사적인 도전이었다. 38선 이남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비록 38선을 향하여 몇 발자국 뛰다가 총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탈출하는 것이다. 이런 결심을 굳히고 있는데 오후 5시경, 때마침 금천에 출장 나왔던 황해도 민청위원장이 수행원을 대동하고 비판회가 열리고 있는 학교교실에 나타났다. 비판회는 처음에는 직원실에서 열렸다. 그러나 직원동맹원들·부녀동맹원들·당간부들이 추가로 와서 합동 비판회로 바꿔지게 되자, 장소가 좁아서 넓은 교실로 자리를 옮겨 빽빽이 앉게 되었다. 국방색이 누런색으로 바랜 낡은 무명양복을 입은 도 민청위원장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일제시대로부터 사상범으로 풍상을 겪은 그의 눈은 매서운 독기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는 피고석에 앉아 있는 나를 노려 본 후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동무들, 우리가 혁명사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위험한 반혁명분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혁명을 반대하는 악질분자 들입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병균이 몸 밖에 있는 병균보다도 우리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저런 악질반동분자는 무자비하게 타도해버려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할 때까지 나는 태연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할 때는 가슴이 섬뜩했다.

    “저 자의 눈을 보십시오. 지금도 이남으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소. 여기 보안대원 두명과 검사 두명이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민청맹원 중에서 다섯명을 더 지명하여 감시를 엄중히 해야 합니다.”

    나는 “저 도민청위원장이란 자가 어떻게 나의 속마음을 그렇게까지도 샅샅이 알고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자로구나”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탈출 결심은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맹원들의 열성 비판 발언을 지켜보더니, 딴 볼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나는 그 자가 제때에 잘 떠나간다고 속으로 반가워 했다.

    비판회는 지루하게 오래 끌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전깃불이 없는 교실에서 전깃불이 있는 직원실로 장소를 옮겼다. 이때 이미 비판 발언을 끝낸 고위간부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그곳을 떠나버렸다. 어둠과 함께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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