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쉬운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렵지만 한 번 뚫어 보자는 정부의 결연한 자세가 묻히는 것이 안타깝네요"
    박인국 유엔 대사는 11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과 관련해 국내 일각에서 "애당초 안보리에 가져갈 사안이 아니었다", "북한의 입장까지 실리는 모호한 정치적 성명이 돼 버렸다"는 등의 실망스러운 반응이 나오는 데 대해 이렇게 얘기를 꺼내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1996년 동해 잠수함 사건 당시에는 북한의 소행임이 분명한 물증도 있었고 우리가 안보리 이사국이었는데도 규탄(condemn) 등의 용어는 물론 간접적으로도 북한을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면서 "그 이전 KAL기 폭파 때와 양곤 폭탄 테러 때는 아예 안보리에서 대응조차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박 대사는 "이 정도까지 중국을 끌고 온 것은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한 유엔의 대북 조치에서 큰 선례를 남긴 것이며, 미국 역시 중국으로부터 이만큼 양보를 얻어낸 것을 굉장히 큰 승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동안 박 대사는 협상의 우여곡절과 의장성명 조항 조항에 얽힌 뒷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협상과정에서 중국에 밀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은데.
    ▲중국이 처음엔 (안보리에) 오는 것도 반대했다. 협상 때는 비난, 규탄, 공격 등의 용어도 안 되고 의장성명(PRST)도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의장의 언론발표문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안보리 조치는 결의-의장성명-의장 발표문이 있다)
    중국은 1996년 동해 잠수함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정도 선에서 하든가, 그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만큼 갖고 온 것은 중국을 많이 설득시킨 것이고 미국도 이를 굉장히 큰 승리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안보리에 회부되자 북한이 중국 측에 "왜 그것도 못 막았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중국의 강경한 입장이 이 정도로 수그러들게 된 동기가 뭐였나.
    ▲정상회담이 상당히 컸다. 두 차례 회담, 특히 지난달 말에 캐나다에서 가진 회담 이후에 중국 측의 태도가 많이 변한 것을 느꼈다. 사실 중국 외교 파트는 북한과의 오랜 특수 관계로 인해 한계를 갖고 있다.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정상외교뿐이다. 성명이 나오기 전에 중국 대사와 주말마다 접촉했는데 사적인 얘기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
    또 합동조사단 브리핑(6월14일)도 안보리 회원국들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합조단 브리핑을 하게 된 것은 당시 안보리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헬러 멕시코 대사와 얘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당시 일부 국가(중국)가 반대했고, 일정을 틀려고 했지만 헬러 대사가 강하게 얘기해 며칠 연기하는 선에서 브리핑을 하게 됐다. 브리핑 시간도 당초 3시간가량이었는데 북한이 자신들도 설명회를 해야 한다고 해서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브리핑 때 외국 전문가 6명이 사실상 증언을 해 주면서 참석한 안보리 회원국 대사들이 `아 이건 북한 짓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후 중국이 굉장히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 것 같다. 브리핑 때 기술적 사안에 대해서만 질의응답을 하기로 했었는데 프랑스와 터키가 나서서 우리 입장을 지지한다고 말해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란.가자 문제로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던 터키가 나선 것은 중국과 북한에는 상당한 타격이 됐던 것 같다. 안보리 전체 분위기가 확 쏠리는 상황이 됐으니까.

    --G8(선진8개국) 성명이 논의에 영향을 미쳤나.
    ▲성명 5항을 넣은 것은 G8 성명 때문에 가능했다. (성명 5항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 주도하의 5개국이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중국은 "G8과 안보리는 전혀 다르다"며 반대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객관적 사실은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여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논쟁을 벌였다. 중국은 조항 중에 `북한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문구를 빼고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정도로 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우리는 `북한이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부분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해 관철시켰다.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6번 조항이 들어가게 된 이유는.
    ▲중국이 "북한도 엄연히 유엔 회원국이다.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니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도 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원문에 보면 `The Security Council takes notes of the responses from other relevant parties, including from the DPRK, which has stated that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 incident'라고 돼 있다. 여기서 북한이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북한 뿐이다. which 다음의 동사에 단수를 지칭하는 `has'가 들어간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북한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다른 여러 국가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의 반응은 예를 들어 터키 같은 여러 안보리 이사국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중에 하나가 북한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성명 8항에서 한국에 대한 추가 도발 행위 금지를 강조했는데.
    ▲미국이 강하게 요구한 부분이다. 만약 추가 도발을 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어했다. 특히 북한 신선호 대사가 논의 과정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 문제가 됐다. 그 직후 내가 협상 테이블에서 "평양이 자신들 방송으로 한국에 위협을 하는 것은 OK, 상관없다. 그러나 유엔에서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장에서 `만약 안보리가 자신들을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문건을 채택하면 군사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안보리의 신뢰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도 상당히 경청을 하더라.
    북한 대사가 성명이 나온 뒤 기자회견에서 군사적 대응 얘기를 전혀 안 하고 생각보다 낮은 수위로 말한 것은 이번 성명의 심각성을 인식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요구한 검열단 파견 얘기는 안보리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나.
    ▲처음에 굉장히 먹혔다. 우방 대사들조차도 "왜 안 받아들이느냐. 당사국으로서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996년 동해 잠수함 때도 남북 비서장급 회의와 같은 정전협정 체제하에서의 회담이 안보리와 병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며 확립된 관행이 있는데 검열단을 파견하겠다는 것은 기존 협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임을 설명했다.
    결국 중.러도 우리 얘기가 옳다고 생각해 성명 10항에 정전협정 체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정전협정 체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는 부수적 효과를 얻게 됐다.
    그동안 북한은 정전협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화 됐다며 자체 검열단 파견을 주장해 왔지만, 최근 대령급 회담을 갖자고 한 것은 정전협정 체제를 인정하고 들어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성명이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타협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그건 학자들 얘기인 것 같다. 사실 북한도 들어오고 싶어할 거고, 6자회담의 주도권을 쥔 중국은 한시라도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하려고 하겠지만, 미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번 협상과정에서는 6자 회담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참여연대가 안보리 의장에 서한을 보낸 것이 논의과정에 영향을 미쳤나.
    ▲논의에서는 전혀 회람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도 않았다.
    다만, 합조단 브리핑 직전에 서한이 보내졌고, 일부 대사들이 "어떤 기구냐. 팩트가 맞는 거냐"는 등의 질문을 해 왔는데, "수없이 많은 NGO가 있는 것 아니냐. 그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받아넘겼다. 중국 등이 한국 내에서도 합조단 결과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은근히 걸고넘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