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⑩ 

     「형님, 조선은 어찌 될까요?」
    고베에서 갈아 탄 사이베리아호(S·S·Siberia) 갑판에 선 나에게 이중혁이 물었다.

    강한 바람에 옷자락이 날렸고 파도가 높아 배가 흔들렸지만 우리 둘은 나란히 바다를 향해 서 있다. 고베를 떠난 것은 11월 17일, 배는 사흘 째 하와이를 향해 항진하는 중이다.

    내가 바다를 향한 채 대답했다.
    「러시아와 전쟁이 끝나면 곧 조선의 장래가 결정될거야.」

    이미 일본은 조선 땅에 주차군을 설치한데다 군사경찰제를 도입하여 군대와 경찰이 지배하는 체제가 된데다가 한일협정서(1904.8)를 체결하여 재정권과 외교권까지 박탈했다. 대한제국의 모든 기관에 일본인 고문을 보내 고문 정치를 시작했으니 이미 주권을 빼앗긴 것이나 같다.

    이중혁이 바다를 향해 길게 숨을 뱉고나서 다시 묻는다.
    「밀서를 전하고 돌아오실 겁니까?」
    배에 탄 후에 내가 황제의 밀서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중혁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공부를 하겠어.」
    내가 말하자 이중혁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셔야 합니다.」
    「빼앗긴 주권을 찾으려면 실력을 갖춰야 돼. 허송세월을 하지는 않을 거야.」
    「저도 돕겠습니다.」

    그러나 당장 내일 일을 알수가 없는 타국(他國) 생활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그 기회가 올 것인가?
    그때 문득 엊그제 만난 안복삼의 말이 떠올랐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가? 지금 안복삼은 굴속같은 3등실에 누워 만담을 늘어놓고 있을 것이다.

    「거기, 조선인이오?」
    불쑥 들리는 조선말에 우리는 놀라 몸을 돌렸다. 고급 양복을 입은 신사가 서 있었다. 우리도 양복 차림이었지만 싸구려다.

    시선이 마주치자 사내는 다시 묻는다.
    「유학생 같은데 미국에 가시오?」

    사내의 조선어에 일본어 억양이 배어나왔다. 일본인이다.
    이곳은 일등석과 가까운 갑판이다. 내가 40대쯤으로 보이는 사내를 똑바로 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댁은 뉘십니까?」

    그러자 뒤쪽에 서 있던 사내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수행원같다.
    「건방지다. 감히 누구냐고 묻다니.」

    그러자 손을 들어 수행원의 말을 막은 사내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일본국 외무부 관리 아카마쓰요. 놀랐다면 사과하지. 그럼 내 물음에 대답해 주겠소?」
    「맞습니다. 우린 유학생이고 둘 다 이씨 성을 씁니다.」

    내가 말하자 사내가 다가와 옆에 섰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조국을 위해 봉사하실 계획이오?」
    「그렇습니다.」
    이번 대답은 이중혁이 했다.

    이중혁이 눈을 치켜뜨고 사내를 보았다.
    「그럼 조국을 버리고 도망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허허.」

    짧게 웃은 사내가 다시 나서려는 수행원에게 눈짓을 하더니 말을 잇는다.
    「내 조상은 백제인이요. 지금도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소.」

    그러더니 나와 이중혁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워싱턴의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소. 유학 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시오.」

    그러더니 사내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명함에는 영사 아카마쓰 다케오(赤松武雄)라고 찍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