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30)

     1904년 8월 6일, 저녁 무렵에 나는 감옥서 서장 김영선의 방으로 불려 갔다.
    김영선은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는데 옆쪽에는 부서장 이중진이 서있다.
    그들의 표정을 본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둘 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앞에 섰을 때 김영선이 말했다.
    「우남, 내일 출옥 하시게 되었소.」
    말문이 막힌 나는 눈만 크게 떴고 김영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동안 고초가 많으셨지만 이룬 것도 많으시오. 그렇지 않소?」

    목이 메인 내가 어깨를 늘어뜨렸을 때 이번에는 이중진이 말했다.
    「옥중 학당을 세우셨고 서적실까지 마련해 놓았으니 세계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소.
    더욱이 수많은 글을 쓰셨으니 감히 이곳에서 이룬 것이 많다고 해도 될 것이오.」
    「고맙습니다.」

    겨우 입을 뗀 내가 둘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모두 두 분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그 한토막이라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제 혼자 이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부디 밖에서 큰 뜻을 이루시오.」
    하고 김영선이 덕담을 했고 이중진이 말을 잇는다.
    「모두 우남의 열정이 우리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 열정을 품고 지낸 것 같다.
    수백 권의 책을 독파했으며 영어는 잡지까지 다 외웠다.
    영어 성경은 첫줄만 보아도 눈을 감고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기가 자유로워졌다.

    중동전기(中東戰記) 세권을 번역했으며 저술한 책들은 '독립정신'까지 포함해서 네권이다.
    아직 끝내지 못한 작품도 세가지나 있다. 한문 논설에다 신문에 기고한 논설을 합하면 백여 편이 되겠다. 거기에다 한시(漢詩)와 편지, 역사를 기록한 노트까지 수백편이다. 조약문을 베낀 노트도 있으며 안경수, 권영진을 교살형에 처하는 방문(榜文)도 적어놓았다.

    나는 옆쪽에 놓인 커다란 보자기를 본다. 내가 쓴 기록들이다.
    5년 7개월 동안 나는 결코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밖에서 10년을 공부했더라도 이만큼 성취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세상이 바뀌는 마당에 감옥서에 갇힌 처지가 분하고 조바심이 나서 미친 듯이 쓰고, 외우고 가르치며 단련을 했다.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었다. 그렇다.
    나는 새벽하늘을 응시한 채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주님이 믿는 자는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닳았다.
    그것은 신념과도 통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난과 두려움, 고통을 받아들이면 새 길이 열린다는 사실도 체험했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5년 7개월간의 집중적 학습을 통해 새로운 이승만이 되어서 세상으로 돌아간다. 눈을 감은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올해 2월에 시작된 러일전쟁은 지금 일본이 우세하다.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해 오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만일 일본이 승리한다면 조선 땅은 일본의 전리품이 될 것이었다.

    그때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종일(李鍾一)이 일어나 앉았다.
    이종일은 제국신문사 사장으로 나보다 17년 연상인 46세이다. 그도 오늘 출옥하는 것이다.

    「어, 벌써 일어나셨구만.」
    이종일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반신을 세운 나도 웃음 띤 얼굴로 이종일을 보았다.

    「예,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서도 최선을 다 하리라.
    그리고 하늘의 뜻에 맡기리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