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이 청와대 참모진 전면교체, 선거책임자 사퇴 등 당-정-청 쇄신안을 내걸었다. 다 좋다. 그러나 한 가지 잘 모를 게 있다. 당을 ‘개혁적 중도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개혁적+중도적+보수...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보수’ 앞에 웬 형용사와 수식어와 접두사가 그리도 많은가?
     아마도 보수는 보수인데, 개혁적이고 중도적이라는 소린 모양이다. 그렇다면 개혁 안 하겠다는 보수는 어떤 그룹을 지목하는 것인가? 자기들이 중도적 보수임을 자처한다면 극단주의적 보수는 또 어떤 그룹을 지칭하는 것인가? 개혁도 안 하겠다 하고, 극단적 보수, 즉 파시스트적 1당 독재나 군사독재를 주장하는 정파가 이 나라에 있는가? 있다면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 바란다. 누구를 두고 하는 소린지 얼굴 좀 보게.
     개혁 안 하겠다는 보수는 무엇을 안 하겠다는 보수라는 소린지, 그게 누구인지도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였으면 한다. 세상에, 개혁(고치고 개선하는 것)을 안 하겠다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지부터가 우선 의아하다. ‘진보’ 뿐 아니라 ‘보수’라 할지라도 유권자를 향해 서면 의례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고치겠다”고 말하지, “예날 것을 하나도 고치지 말자”고 할 정파가 과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중도 보수란 또 무슨 말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민주적 보수(의회주의적 보수)는 그 자체가 이미 중도다. 좌익독재와 군사독재를 다 같이 배척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상으로도 오늘의 보수는 시장근본주의, 복지경시(輕視)를 가지고는 집권과 통치가 불가능하기에 그런 보수는 없다. 이처럼, 중도는 민주보수에서 민주진보까지의 다양한 정파들이 나누어 갖는 공공재(公共財)이지, “중도는 내 고유명사...”라고 자처하는 자만의 사유재산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민본 21’은 왜 굳이 개혁적, 중도적이란 접두사를 갖다 붙이는 것일까? 반박의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것은 좌파에 대한 콤플렉스의 표현 아닐까 추정 된다. 1980년대 세대인 초선의원들은 상당수가 당시 운동권적 분위기에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일부는 운동권 출신이거나, 또 일부는 딱히 1선 운동권은 아니더라도 그 주변을 맴돌며 운동권적 학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노무현당이나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보수우익’이라는 한나라당에 들어와서 금배지를 달았다. 어딘가 겸연쩍기도 하고, 옛날 동지들인 좌파에 대해 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너 이제 보수우익 됐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럴수록 그들은 “나는 젊었을 때 비해 우경(右傾)은 했다. 그러나 보수는 아니다. 나는 중도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좌파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할 정도의 용어를 쓰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개혁적 중도적 보수를 영어로 뭐라고 번역하나? reformative, centrist conservatives? 이런 게 대영백과사전이나 사회과학사전에 있나? 웃겨도 한참 웃기는 말장난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정명(正名)론에 투철해야지, 그렇게 늙은이들보다 더 구렁이 담 넘는 식의 모호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어법을 구사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정히 그러려면, '보수'를 아예 떠나 '중도'만의 정당을 따로 하나 차리는 것은 어떤가? 왜 굳이 자신들이 배척해 마지 않는 '반(反)개혁적, 극단주의적 보수'한테 빌붙어 재미는 재미대로 보고 '중도 이름'은 그것대로 날리려고 하는가? 그건 얌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