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연제 ⓒ 뉴데일리
    ▲ 오연제 ⓒ 뉴데일리

    날씨가 참 요란스럽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분명 온 것 같은데 봄인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국가도 날씨 장단에 맞춰 어수선하다. 천안함 사건, 검찰수사, 북한과의 문제 등으로 대한민국의 따뜻한 봄은 사라지고 날씨마저 스산스럽다.
    1996년 OECD가입국, 2010년 G20의장국 등 경탄의 속도를 자아내던 ‘한강의 기적’이 십여 년 째 선진국의 문가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지난 4월 22일, ‘신뢰와 사회적 자본의 구축’을 주제로 ‘한국 선진화포럼’이 명동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가진 제 44차 월례토론회에서 찾아보았다. 이 토론회가 내준 해답의 요지는 대한민국이 선진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선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가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뢰(信賴).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저서 '트러스트'에서는 신뢰를 사회적 자본으로 명명하며 국가의 거래 비용을 줄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서술하였다. 후쿠야마는 사회적 차원의 신뢰가 형성된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은 고(高)신뢰 문화의 국가에서는 연고주의가 약하고 공적인 신뢰가 높은 반면, 이탈리아, 인도, 중국, 한국과 같은 저(低)신뢰 문화권에서는 가족이나 지인과는 잘 지내지만 오히려 공적인 신뢰도는 낮다고 언급하였다.

    분명, 21C 선진사회의 조건인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사회적 신뢰’에 사회적 자본의 핵심을 두고 있다. 이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사람들 사이의 믿음은 견고해져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즉, 프로젝트를 ‘Yes’ or ‘No’ 할지에 대한 해당 근거를 일일이 조사하고 제출 할 비용을 신뢰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장덕진 서울대 교수, 박통희 이화여대 교수는 각각 ‘사회적 자본도 경제성장에 중요한 요소’, ‘국가와 시장이 절제를 배울 때 신뢰가 회복된다.’, ‘정부에 대한 신뢰의 증진은 선진화의 관건이다.’로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사회적 자본 구축을 위한 실행과제 실천을 통한 선진화를 촉구했다. 특히, 경제학자인 스티븐 낵과 필립 키퍼 박사의 “타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국가 신뢰지수가 10%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여 신뢰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한국사회의 신뢰수준은 1980,90년대를 거치며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 지수는 신뢰, 사회규범, 네트워크, 사회구조 등으로 구성되는데, 사회적 자본 지수로 볼 때 한국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OECD 29개국 중 하위권인 22위로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 최근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중 3명만이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한다고 한다. 이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물론 중국과 베트남 같은 개도국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를 개인보다도 더 신뢰하지 못하며, 법․제도가 공정하게 집행된다고 믿는 사람도 적다는 사실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사회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취약한 사회적 자본이 선진화를 가로막고 성장비용을 더욱 크게 만든다. 한국사회의 신뢰 수준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최근 정보사회의 신뢰와 사회적 자본 조사(최향섭, 2007, 정보통신연구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다른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킬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회, 다른 이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회로 요약된다.
    그 원인을 정부관료, 경제인, 지식인, 정치인 등 리더십에 대한 불신으로 꼬집으며 그것들이 생활세계 속까지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사회지도층의 올바른 리더십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된다.

    물론, 지나친 신뢰 혹은 신뢰도가 높다고 해서도 무조건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뢰는 크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적 영역에서의 신뢰라면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는 사람보다는 제도나 체제에 대한 신뢰로 분류한다.
    여기서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대한민국의 학벌, 지역 등의 연고주의로 인한 높은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후쿠야마가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혈연 등의 개인적 연고(緣故)를 초월하여 사회적 범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적인 신뢰’임을 주목하여야 한다. 사적인 연고를 초월한 공적인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면서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에 유리한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국민들의 신뢰와 신임을 받고 있다면 반대에 부딪치는 거래비용의 증가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 사적인 연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폐쇄적 배타주의는 그 외의 무관한 다른 사람들과는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신뢰를 근간으로 한 자발적 사회성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살린다는 후쿠야마의 날카로운 지적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도 이기주의와 연고주의,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전체사회이익의 틀 안에서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개인주의로 격상시켜야 한다. 선진국의 가치관은 전체사회 이익의 틀 안에서 개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보편적 개인주의 바탕을 둔다. 우리나라는 나와 내 가족, 혈연•지연•학연 등 전체 사회 안에서 극히 일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나 연고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인은 팔이 안으로 굽는 가치관을 가지고 내 가족, 혈연, 지연 등 특정집단에 속한 사람은 잘해도 못해도 같은 편을 든다. 집단이기주의 가치관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상충될 수 있다. 사회 전체에 배타적•폐쇄적•차별적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진실과 공정한 신뢰가 필요하다. 정부, 검찰, 기업 등 대표집단들의 투명한 속마음으로 다가와야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 될 수 있다.
    굽은 팔을 펴서 양 팔을 벌려보자. 그리고 팔 속에 숨은 마음을 드러내보자.
    마음과 마음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신뢰가 생길 수 있으며 신뢰는 선진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를 구축해나가는 기반이 된다.
    감춰 놓은 팔을 풀고 대한민국은 새로운 날개를 펼쳐야 한다.

    봄은 봄 같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