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힘을 모아 ‘괴물’을 물리치는 사회를 기대하며.

  • ▲ 윤재민 ⓒ 뉴데일리
    ▲ 윤재민 ⓒ 뉴데일리

     얼마 전 있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은 모든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그 상처는 이후 이어진 정부와 대중의 갈등에 의해 더욱 크게 벌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설 타임스(FT)는 이런 한국의 현실을 지적해 ‘한국인들, 국가를 실제 괴물로 여겨(South Koreans see their state as the real monster)’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달기도 했다. 사실 영국의 일간지가 지적하지 않아도 정부의 대한 대중의 불신은 우리가 전부터 느꼈던 문제다. 논평에 언급된 영화 ‘괴물’이 흥행에 성공했던 요인에는 영화가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었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정부, 즉 국가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큰 손실을 입힌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적 자본의 뿌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신뢰는 경제적인 신용(Credit)을 의미한다. 이 신용이 바탕이 되었을 때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경제발전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를 경제적 신용으로 바꿔 말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으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둘은 같은 의미이다.
    자유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정부의 재정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정부 정책이 시행될 때 민간이 이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정책을 지연시켜 정책시차를 늘린다던가, 정책에 따라주지 않을 때 거래비용은 막대하게 증가한다. 정부가 운용하는 자금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이는 엄청난 비용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경제학자인 스티븐 낵과 필립 키퍼 박사가 발표한 “국가 신뢰지수가 10%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한다.”는 자료나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과 영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지수가 매우 낮게 나타난다는 자료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경제적 신용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4월 22일 오전 7시 명동 은행회관에서는 (재)한국선진화포럼에서 주재한 ‘신뢰와 사회적 자본의 구축’에 대한 월례토론회가 있었다. 한국 경제 연구원의 이병기 연구위원, 서울대 장덕진 교수, 이화여대 박통희 교수는 사회적 신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민들의 불신의 원인은 후쿠야마가 지적했던 ‘배타적 연고주의’이며, 이를 타파해야만 사회가 선진화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좁은 차원의 신뢰인 ‘연고’를 벗어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신뢰인 ‘연대’, 즉 공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토론자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각각 ‘보편적 법질서의 확립’, ‘국가, 시장의 절제와 소수자의 사회적 참여기회 확대’, 그리고 ‘정부의 탈 권위주의를 통한 국민의 신뢰증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연고주의는 일상에 만연해있다.
    얼마 전 드러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팀의 파벌문제, 프로야구 팬들간의 ‘홍어’ 발언 등 지금 당장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는 문제들만 해도 여러 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나라에서 서로 불신하며 다투는 모습을 외부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자. 우습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지적이 옳다고 느껴지지만, 가슴 한 켠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감정적인 문제 외에도 연고주의에서 비롯된 낮은 공적 신뢰도가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국민들 전체의 삶의 수준을 악화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개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세 토론자가 제시한 방법들을 시발점으로 해서 우리 사회의 공적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더욱 많은 방법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조속하게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화 괴물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로 나오는 변희봉은 가족들만의 힘으로 괴물을 처치하려 하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너무나도 늦은 구출작전 때문에 주인공의 딸(고아성) 역시 죽고 만다. 정부가 너무나도 권위적인 자세로 나오며 가족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딸이 살아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신뢰해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둘 모두가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관객들이 슬퍼했다. 우리 사회가 속 좁은 연고주의에서 탈피하고, 조금 더 높은 공적 신뢰도를 갖추게 되는 모습을, 정부와 민간이 하나가 되어 우리를 위협하는 ‘괴물’을 물리쳐내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