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동지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회창 씨의 별명이 ‘대쪽 같은 사나이’였습니다. 국민 다수가 ‘대쪽’같이 곧은 사람, 불의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씨가 한나라당의 후보가 된 것을 모두가 크게 다행스럽게 여겼고,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우리 다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반대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이 되고 이회창 후보는 근소한 표차로 낙마하였습니다. 이회창은 줄곧 ‘대쪽 같은’ 법관이었지 결코 유능한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김종필의 손을 잡지 못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김종필의 손을 김대중이 잡았습니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이던 김영삼의 후원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인제가 깡충깡충 경상도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김영삼은 막지 않았습니다. 김영삼이 진정 이회창이 꼭 15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면, 이인제를 청와대 창고에 1주일 쯤 굶기고 가두어 두었어야 했을 겁니다. 내 생각에 김영삼은 이회창이 떨어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회창이 2002년 또 다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한 번이면 족하지. 다른 당원들에게도 출마의 기회를 줘야지.” - 그런 생각 때문에 그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한나라당은 그를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세웠습니다.

    고심 끝에 김대중은 노무현을 후계자로 내세우고 2002년 월드컵의 영웅 정몽준을 교묘한 방법으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는 노 씨를 도와 그가 대통령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회창·노무현의 한판 승부를 관전하는 국민은 처음에는 한심하다 여겼습니다. “저건 대학원생과 유치원생의 대결 아닌가”하며, 유권자는 대개 이회창 후보의 KO승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회창이 패배하여 김대중·노무현이 10년 동안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밟고 흔드는 바람에,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는 빈사상태에 빠졌고, 그 후유증은 오늘도 이 나라를 골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지난 2007년 선거에서도 반미·친북을 표방하는 그 세력이 승리했으면 아마도 대한민국은 김정일의 간접침략의 희생제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던 한나라당과, 두 번이나 이회창을 당선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다 쏟은 지지자들을 외면·배신하고 이회창은 오로지 충청도가 기반인 작고 한심한 지역정당을 하나 만들어 그 당의 당수가 되었으니, 그토록 비난하던 지역주의의 김대중을 보기가 민망하고 창피하지 않습니까.

    이회창 동지, 이회창당을 한나라당에 맡기고 빨리 정계를 은퇴하세요. ‘대쪽’이 어쩌다 ‘엿가락’이 되어 6월 더위에 아주 녹아버릴 겁니까. ‘이게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