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겸 작사가인 반야월(93)씨가 친일행적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며 친일가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고뇌를 털어놨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가사를 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 작사가 반야월씨 ⓒ 연합뉴스
    ▲ 작사가 반야월씨 ⓒ 연합뉴스

    반씨는 1일 국회에서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해 “일제 말기의 상황은 전시체제였고 온갖 강압과 굴욕이 강요된 시대였다”면서 “예술가들이 양심적으로 일제에 협력한 경우는 없었고 대부분이 마지못해 협력했다”고 밝혔다.

    반씨는 “하지만 군국 가요 등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잘못된 길로 내몰아졌다면 그분들에게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그러나 일제시대 친일 행적의 과(過)보다는 국가를 위해 공(功)이 많은 훌륭한 분들이 많다”는 점도 피력했다.

    이어 그는 “그들을 함부로 외면해서는 안 되며 이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솔직한 평가를 통해 용서와 화합의 길을 열어나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반씨는 1917년 마산 반월동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창오(朴昌吾)다.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한 바 있으며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더불어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린다.

    꽃마차, 단장의미아리고개, 유정천리, 울고넘는 박달재, 만리포사랑,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처녀, 내고향 마산 등이 잘 알려진 곡이며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5000여곡의 노래를 작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