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24)

     세르진 사바틴, 러시아의 건축가로 3년 전인 고종 32년(1985) 민비가 시해 되었을 때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일본군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궁궐 안에 서양인들을 교대로 숙직시켰기 때문에 역사현장의 증인이 되었다.

    그 사바틴이 지금 내 앞에 앉아있다.
    정동(貞洞)의 손탁 빈관(賓館) 안이다.

    내 옆에는 이 빈관의 주인 안트와네트 손타크(Antoinette Sontag),
    그리고 그 옆에는 윤치호가 앉았다.

    사바틴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내가 국모 시해 현장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일이 뭔지 아시오?」

    사바틴이 영어로 말을 잇는다.
    「그 일본 습격자들과 내통한 조선 관리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소.
    궁성 수비군이 1천 5백이나 되었지만 왕과 왕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자는 드물었소.」
    그리고는 사바틴이 머리를 저었다.

    「그때 일본인들은 왕을 시해할 수도 있었던 것이오.」

    윤치호는 이미 들었는지 묵묵히 앉아있었고
    손탁은 웃음 띤 얼굴로 나와 사바틴을 번갈아 보았다.
    손탁에게서 짙은 향내가 맡아졌다.
    수잔과는 다른 냄새다.

    손탁은 임금의 최측근이다.
    이곳 손탁 빈관도 고종의 하사금으로 지었는데 바로 사바틴이 건축을 맡았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에 일익을 담당한 공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이 손탁인 것이다.

    그때 손탁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공사관에 계실 때부터 내가 올리는 포도주 외에는 드시지 않아요.
    아무도 믿지 못하시는거죠.」
    윤치호가 머리만 끄덕였고 나는 외면했다.

    오늘 이 자리는 윤치호하고 이곳에서 약속을 하고 만났다가 손탁과 사바틴이 합석하게 된 것이다.
    윤치호는 손탁과 잘 아는 사이였으나 나는 두어번 안면만 있을 뿐이다.

    「자, 그럼.」
    하고 손탁이 사바틴에게 눈짓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목례를 나눈 둘이 방을 나갔을 때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방에는 손님이 우리 둘 뿐이다.

    「여기 오는 사람마다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 같군요.」
    그러자 윤치호가 빙그레 웃었다.
    「나도 서너 번은 들었어.」

    윤치호는 이번에 독립협회 회장이 되었고 나도 회원으로 총대위원(總代委員)이다.
    지난 3월 우리는 1차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絶影島) 조차(租借)를 무산시켰다. 러시아 공사 스페에르(Alexei de Speyer)는 대한제국 정부에 대해 모든 지원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내가 손탁이 사라진 쪽에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우리 독립협회가 러시아 절영도 조차를 무산시킨 것에 손탁이 유감을 품은 것 같습니다.」
    「아마 폐하께서도 그럴지 몰라.」

    윤치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내가 물었다.
    「임금이 러시아 측과 미리 약속을 했을까요?」

    입맛을 다신 윤치호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또 물었다.
    「임금이 뇌물을 받고 각국에 특혜를 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헛소문일까요?」

    「이보게 우남.」
    하고 윤치호가 입을 열었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임금은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은 망합니다.」

    대불경(大不敬)이다.
    나는 결국 이런 말을 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