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 <철학과 현실> 2010 봄호(號)에 인하대 철학과 김영진 명예교수가 기고한 글 “철학적 병과 임상철학에 관하여”를 보았다. 그 동안 필자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정규 학문의 세계에서도 다루어졌구나 하는 반가움을 느끼게 한 글이었다.
    광신주의(fanaticism)와 과격주의(radicalism)를 일종의 질병현상으로 보고, 그에 대한 철학적 치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것은 한나 아렌트(Arendt)와 에리히 프롬(Fromm) 이래의 일관된 흐름이라고 했다.

     김영진 교수는 한국의 386 극좌파가 보이는 반(反)민주성과 도덕적 우월주의를 그러한 철학적 질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필자 역시 그런 관점을 가져 왔다. 이 점에서 사회현실을 아름다움이냐 추함이냐, 건강함이냐 병(病)적이냐로 갈라보는 관점은 충분한 학문적 이유와 근거를 갖는 셈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의 광신적 폭력, 나치스 파시스트의 잔인성, 폴 포트의 학살, 탈레반의 반(反 )문명성, 마오쩌뚱 홍위병들의 광기(狂氣), 김정일의 요덕수용소...는 모두 미친 짓이요 미친 증(症)이다.

    그건 좌(左)니 우(右)니 하기 이전의 문제다.

    여기에 건강하고 고아(高雅)한 철학적 치유, 철학적 카운슬링, 철학적 임상(臨床)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필자가 항상 관심을 가져 온 '정신적 항체(抗體)'라는 개념하고 상통하는 말이다.

     많은 어정쩡한 사람들은 386적 일탈을 비판하거나 김정일을 비판하면 “왜 진보를 매도하는가? 그건 수구(守舊) 아니냐?”고 이상해 한다.
    그러나 386 극좌파와 김정일은 스스로 ‘진보’라고 자처하는 것 뿐이다. 그들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좌파=진보'라고 하는 것은 '비오는 개인 날'이라는 하는 것 만큼이나 모순된 말이기에. 그들은 단지 전체주의적, 폭력적, 반(反)지성적, 광신적, 사이비 메시아적, 과대 망상적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386 극좌파가 한 것은 ‘반독재’에 편승한 전체주의 운동이었지, 대한민국 제헌정신이 깔아놓았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심지어는 ‘민주적 진보’와도 거리가 아주 먼 것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 ‘민주적 진보’와 전체주의적 좌파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하고서, 386이 ‘반(反)군사정권’을 내걸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을 무조건 ‘민주화 운동’ 세력이요, ‘진보’ 세력인양 착각한다.
    그들 역시 좌(左)쪽에 섰다뿐이지 또 하나의 독재 권력인데...무식한 이야기다.

     김영진 교수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이 점에서 더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철학적 질병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에 대한 일부 지식인(심지어는 이런 질병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치유해야 할 종교인 일부까지)을 포함하는, '헷갈린 사람'들의 불투명한 인식과 휩쓸림을 교정하기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