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⑱

     갑신정변(고종21, 1884)을 일으킨 김옥균, 서재필 일파는 변법개화파 또는 일본당으로도 불린다.
    그들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민비 세력을 타도하고 신정부를 수립했지만 사흘만에 붕괴되었다.

    민비의 요청을 받은 청군이 일본군과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임금을 빼내왔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임금과 민비 주도의 정권은 자주적 개화정책을 시도했지만 청은 조선을 속방화(屬邦化) 시키려는 노력을 가중시켰다.

    또한 일본도 물러난 것이 아니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도 이해에 따라 격동했다.

    그러다가 고종 31년(1894),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주도권이 다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일본의 전횡에 반발한 왕실이 고종 32년(1895) 8월, 친러, 친미 내각을 구성하자 일본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가 지휘하는 낭인 무리를 궁궐로 보내 국모인 민비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고종 33년(1896) 2월, 임금은 이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 새 정권을 출발시킨다. 조정은 기를 쓰고 있었지만 마치 범의 눈 앞에서 뛰는 토끼 모양이다.

    강의를 마친 서재필이 나를 불렀을때는 12월 중순의 오후였다.

    창 밖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어둑한 날씨,
    서재필이 빈 강의실의 창가로 나를 데려가더니 나란히 교정을 향하고 섰다.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을 한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서재필이 입을 열었다.
    「협성회에서 조정을 비판하지 말라는 지시가 아펜젤러한테 내려온 것 같네.」
    긴장한 내가 몸을 굳혔고 서재필의 말이 이어졌다.

    「조정은 독립협회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네.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어.」

    「누가 그렇게 합니까?」
    불쑥 물었던 내가 곧 어깨를 늘어뜨렸다.

    협성회(協成會)란 배재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토론회를 말한다.
    서재필이 지난달에 구성했는데 주제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독립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 사회, 제도 등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참신했고 처음에는 회원이 몇 명 안되었지만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다.

    나는 협성회의 서기(書記)를 맡고있는 것이다. 내가 창밖을 향한 채로 말했다.

    「행여 왕권이 침해 당할까봐서 그러는 것이지요. 하나에서 열까지 왕실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쉿.」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 서재필이 쓴웃음을 짓는다.

    교실은 텅 비었다.
    이제 어둠이 덮여지는 중이었고 눈발은 더 굵어졌다.
    서재필이 말을 이었다.

    「나는 왕실에 대항하고 싶지는 않네. 이 난세에 자중지란까지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러시아 공사관에 파묻혀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볼 겨를이나 있겠습니까?」

    「궁여지책 아닌가?」

    「선생님의 독립협회를 통해 백성들의 중지를 모으고 의지하도록 해야됩니다.」

    「허어, 자네가 열사(烈士)가 되어가는군.」
    하면서 서재필이 웃었지만 나는 얼굴에 박힌 어두운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바로 12년전에 서재필은 그런 열사였던 것이다.
    서재필은 일본당이라기보다 개혁당이라고 불러야 옳다.
    개혁을 위해 일본세(日本勢)를 빌리려고 했다. 

    서재필이 다시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그땐 무모했어.」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서재필이 말을 잇는다.

    「너무 순진했고,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가슴이 끓어오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