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어떻게 보고 읽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거창한 이야기다. 헤로도투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인(哲人)들이 “역사를 이렇게 보자‘는 주장들을 내놓았다. 그럴사 한 구석도 있고, 소설 같은 구석도 있다. 필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관(史觀)‘ 같은 것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모두가 어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역사를 이렇게 저렇게 제 입맛대로 색칠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게 필요의 산물이기는 하다. 시대마다 시대적인 요청이 있게 마련이고, 역사를 보는 눈도 그 필요에 따라 조절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필요, 오늘의 시대적인 요청은 뭔가? 그것을 필자는 ‘대한민국 통합사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준거(準據)가 너무 불필요하게 갈기갈기 찢겨 있다고 보기에. 


     통합사관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자유-민주-공화-인권-시장-복지’ 자체를 파괴하려는 세력은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한 여러 흐름들은 “우리는 서로 달랐으면서도 결국은 오늘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이룩하기 위한 서로 다른, 필요한 역할들을 한 셈이었다”라는 공통분모로 엮을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해, 자유-민주-공화-인권-시장-복지‘를 지향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정과 관련해, 그리고 6.25 남침을 전후한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한 필사의 노력과 관련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功)의 측면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 밖의 독립운동 리더들의 단심(丹心)도 이제는 평양의 ’애국열사능‘에 마냥 묻혀있게 놔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충원 안으로 폭넓게 맞아 들여야 한다는 충정(衷情)에도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통합사관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무리없이 엮어내느냐 하는 것이 뜻있는 이론가들의 몫일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역시 이제는 대립관계 아닌 보완 관계로 엮어야 하지 않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선(先)산업화 노선은 적중했다. 훗날의 민주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었다. 이것을 계속 부인할 필요가 있나? 압축성장의 지나친 코스트에 대해 오늘의 시점에서 허심탄회하게 성찰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민주화 역시 대한민국의 문명국화를 위해 그 역할을 했다. 이것을 계속 부인할 필요가 있나? ‘민주화’를 한다면서 실은 극좌, 친북으로 일탈한 일부 일탈적 흐름을 떼어 버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해방 65년-이제 한반도 전역을 통틀어, 유의미(有意味)하고도 문명적 가치가 있는,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체제다운 체제는 대한민국 헌법체제 밖엔 없게 되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긍정하면서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던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피땀 어린 공유가치다. 이 거대한 사실과 진실과 현실 앞에서 모두가 진정으로 작아질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한민국 통합사관’을 일구어 내는 작업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