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 일 년 정도 아르바이트 할 자리 없을까?”

    올 여름 군복무를 마치고 가을학기에 대학원에 복학하는 친구가 물어왔다. 학업을 일 년 정도 쉬게 됐다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조기졸업까지 염두에 두고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의 휴학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친구의 사정은 이렇다. 평일에는 대학의 행정조교로, 주말에는 과외로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왔는데 다음 학기에 ‘행정조교’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복학을 위해서는 등록금을 자비로 부담하게 생긴 것이다. 기존의 재학생에 넘쳐나는 신입생과 복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조교자리는 ‘하늘에 별’이 돼버렸다.

    대학보다 20~100%는 높은 등록금을 내야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조교는 ‘선택’아닌 ‘필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대학원의 과도한 등록금은 ‘학자’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불투명한 미래’보다 무거운 짐이다. 따라서 대학들도 일정시간 근무하면 장학금 형태로 등록금을 면제해주거나 월 일정액의 월급을 지급하는 ‘근로장학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원생들의 숫자가 늘면서 이 같은 혜택들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

    “주 50시간 근무가 규정... 눈치 보여 더 오래 일해”

    조교를 하며 본분을 잃어버렸다는 의견도 많았다. 학과사무실 행정조교는 업무시간 외에 자신의 공부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나 ‘실험실’이나 ‘교수’ 연구실에 소속된 학생들은 그야말로 ‘주야’없이 일 해야 했다.

    서울의 한 대학의 실험실에서 근무한다는 김씨(28)는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따오는 것에 따라 조교들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액이 결정된다”며 “주 50시간 근무가 규정이지만 실제로는 눈치가 보여 더 오래 일한다”고 밝혔다.

  • ▲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 연합뉴스
    ▲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 연합뉴스

    또 다른 대학교수의 연구조교 이씨(27)는 “교수님의 논문에 들어갈 중요한 자료분석을 도맡아 하느라 졸업논문이 한 학기 늦어졌다”며 “내 공부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한 한 것인데 새벽 늦게나 돼야 내 공부시간이 주어진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은 이미 학교 내에서도 팽배한 관행이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공부할 시간을 포기한 채 담당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에 동원돼 이름 한 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다음 학기 서울 소재 모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심한 김씨(26)는 최근 진로를 바꾸었다. 서울 유명대학의 교수인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한국에서 대학원은 공부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수님 일 돕다 끝난다고 하셔서 미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로를 변경했다”고 전했다.

    대학원 등록금 비싼데 장학금은 ‘쥐꼬리’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 대학원의 평균 등록금은 460~481만원을 보였다. 인상률도 같은해 사립대 등록금과 비슷한 7%에 달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주로 학부생에게 돌아간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박씨(26)는 “장학금 한 번 못 받고 졸업한 선배들이 수두룩하다”며 “성적 장학금은 없고 알아서 외부 장학금을 따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현재 대학원생들은 앞으로 10년만 고생하면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공부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버릴 수 없는 학자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생활고에도 꿋꿋하게 견딘다. 실험실에서 50시간 이상 근무하고, 시시각각 교수님이 찾으라는 자료 만드느라 홀로 공부할 시간이 없어도 조교가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의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