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 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 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정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 채만식 <탁류>

    3시간가량 쉼 없이 달리던 버스가 멈추자 사람들이 구겨진 몸을 툴툴 털어내며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고소한 짚 태우는 냄새가 밀려왔다. 시골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이 구수한 향이 코끝에 닿을 때면 괜스레 푸근하고 나른해진다.

    지난 15일 문화부와 관광공사가 강 주변의 숨은 관광지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금강 물길여행 체험행사’에 따라 나섰다. 그 첫 번째 행선지는 강경.

  • ▲ 옥녀봉 가는 길에 만난 가장 오래된 한옥교회인 북옥감리교회 ⓒ 뉴데일리
    ▲ 옥녀봉 가는 길에 만난 가장 오래된 한옥교회인 북옥감리교회 ⓒ 뉴데일리

    조선 후기 강경은 원산과 함께 전국 2대 포구를 이루었다. 금강을 따라 조선팔도의 물자가 움직였다. 서해안의 얕은 수심을 타고 중국 무역상이 강경포구까지 들어섰다. 그러나 강경 포구에서 농사는 어려웠다. 비가 적거나 많이 오면 고스란히 주변 농가에 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들어선 이후, 하구의 물은 크게 줄었다. 대신 쌀 수확량이 늘고,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강경에서 나고 자랐다는 류재협 문화관광해설사는 “강경의 옛 사진을 보면 포구에 무역선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다”며 “어릴 적 헤엄치며 놀던 금강에 하굿둑이 들어선 이후 점점 수질이 악화돼 작은 물고기조차 살 수 없는 환경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시계바늘이 멈추다

    옥녀봉에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금강과 강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란다. 그 길목에서 등록문화재 42호 북옥감리교회를 만났다. 한식 목조구조 양식으로 지어진 현존 유일한 한옥교회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좁다란 길을 오르자 구멍가게가 눈에 띤다. 80년대 영화에서나 볼법한 낡은 공중전화와 평상이 보인다. 등록문화재 인줄 알고 안을 드려다 봤더니 이게 웬걸. 각종 과자며 계란까지 요즘도 성업 중임이 틀림없다.

  • ▲ 옥녀봉을 오르는 길에 만난 구멍가게(좌). 안을 드려다보니 아직 성업중이다(우) ⓒ 뉴데일리
    ▲ 옥녀봉을 오르는 길에 만난 구멍가게(좌). 안을 드려다보니 아직 성업중이다(우) ⓒ 뉴데일리

    300m 남짓 낮은 산이다 보니 정상이 금방이다. 정상엔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와 봉수대가 전부다. 강경은 지역문화재 발굴을 위해 설화를 모아 역사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옥녀봉이다. 옥황상제의 딸인 옥녀가 이곳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종종 목욕을 하러 내려왔다고 한다. 옥황상제는 딸이 지상으로 내려가 목욕하고 오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매번 하늘로 돌아올 시간을 정해두었는데 어느 날 옥녀는 그만 그 시간을 어기고 만 것. 놀란 가슴에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을 시간도 없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헐벗은 모습으로 옥황상제 앞에 서게 됐다. 진노한 황제는 “떠나라”는 말로 옥녀를 내쳤고 갈 곳 없는 옥녀는 허망하게 산에 올라 금강만 바라보다 죽었다. 그 곳이 지금의 옥녀봉이다.

  • ▲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과거에는 이곳이 무역선들로 가득찼었다(좌), 옥녀봉의 터줏대감 오래된 나무(우) ⓒ 뉴데일리
    ▲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과거에는 이곳이 무역선들로 가득찼었다(좌), 옥녀봉의 터줏대감 오래된 나무(우) ⓒ 뉴데일리

  • ▲ '젓갈 시식은 공짜' ⓒ 뉴데일리
    ▲ '젓갈 시식은 공짜' ⓒ 뉴데일리

    빼놓으면 서럽지요, 젓갈시장

    젓갈하면 강경, 강경하면 젓갈이다. 김장철을 앞두고 강경의 젓갈시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대신 듬직한 트럭만 쉼 없이 오갔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곳에만 수백여 개의 젓갈집이 있다. 많은 이들이 강경하면 젓갈을 떠오르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강경에 젓갈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자체의 도움을 얻어 ‘강경젓갈축제’며 ‘강경젓갈전시관’을 만들어냈다. 200년 전통의 몇몇 젓갈집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다.

    “석유값도 안나오는디…업으로 하지요”

    강경에서 새만금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군산을 지나면 서천이다. 서천군 한산면에는 모시와 소곡주가 유명하다. 인간문화재들이 빚어낸 술과 옷은 품질 면에서도 으뜸이다.
    주요 무형문화재 제28호 한산모시 짜기 보유자 방연옥(62)씨의 손놀림이 바쁘다. 서울에서 온 손님들에게 베틀 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기 위해서다.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에 누운 다리위에 올려 양손과 발을 이용해 한 줄씩 차곡차곡 모시를 짠다. 모시짜기는 태모시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모시꾸리기, 모시짜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태모시짜기는 모시풀(저마)의 껍질을 벗겨 부드러운 속살을 골라내는 일이다. 모시째기는 잘말린 태모시를 입술로 쪼개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가장 가는 세모시, 중간 굵기의 중모시, 가장 굵은 막저로 구분된다. 세모시가 가장 비싸고 착용감도 좋다고 한다.

  • ▲ 모시짜기(좌), 모시삼기(우)가 한창. 모시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가습기 가동은 필수다.ⓒ 뉴데일리
    ▲ 모시짜기(좌), 모시삼기(우)가 한창. 모시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가습기 가동은 필수다.ⓒ 뉴데일리

    그런데 베틀 양쪽에 가습기가 나오고 있다. 한참을 방에 불도 떼지 않은 것처럼 방바닥은 얼음장같이 차가운데 굳이 가습기를 풀가동하고 계신 이유를 물었다.
    “모시가 식물껍데기라 습기가 있어야 해요. 건조하면 뚝뚝 끊어져 부서지고 말아요. 옛날에는 가습기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요즘은 좋지요”라며 허허 웃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시는 굵기에 따라서 한 벌에 4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옷으로 모시는 비싼데 작업량에 비해서는 너무 싸서 요즘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석유 값도 안 되요. 그나마 서천에서 200명이나 하고 있으니까 다행이지요”

    앉은뱅이술, “안 일어나려다 못 일어나니”

    찹쌀과 누룩(통밀)이 눈이 맞았다. 짝짜꿍 100일간 발효해 빚어진 소곡주의 역사는 무려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황실에서도 즐겼다는 이 술은 달콤한 술맛과 주도가 높아 일단 마시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취기가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앉은뱅이술’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이 나라 잃은 한을 달래기 위해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술을 빚었다해 소곡주라 불리게 됐다. 국내 전통주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술로 들국화, 메주콩, 생각, 엿기름 등 전통주조법 그대로 만들고 있다. 일체 감미료는 넣지 않는다. 누룩이 술이 될 때까지 1년이나 걸리는데다 쌀100kg로 80리터의 술밖에 나오지 않는다. 같은 양이면 다른 전통주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생산량이다.

    국내 유일의 소곡주 명인인 우희열 여사(74)의 아들 나장연씨(44)는 도시 생활을 접고 귀향했다. 지금은 제조 기술을 거의 전수 받았다. 나씨는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소곡주를 만들고 싶다. “올해 현대식 주조 설비가 완료될 예정이다. 13, 18도 소곡주와 이를 증류한 43도의 불소곡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며 전통주의 다양화를 통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JSA 갈대밭 여기였어?

    “술이 이렇게 달아도 되는겁니까?” 여기저기서 원성 아닌 원성이 쏟아진다. 시음 차 몇 모금 들이킨 소곡주가 아쉬웠던 걸까. 서울로 떠나기 전 술기운도 달아낼 겸 시원한 맞바람이나 쐬었으면 좋겠다. 한산모시관에서 버스로 10여분을 달렸을까. 시원하게 쭉 뻗은 금강을 따라 갈대밭이 장관을 이룬다.

    “잠시 멈출까요?” 문화관광사의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신성리 갈대밭.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병사가 ‘지뢰’를 밟아 처음 만난, 그 으슥한 갈대밭이 바로 여기다. 폭이 200m나 되고 총 길이는 1.4km가 넘는다. 따뜻한 햇살은 금강을 겹겹이 쌓은 옥색비단으로 만들었고 그 곁에 오솔길이 따른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갈대들은 긴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젖혔다, 들었다 제멋대로다.

  • ▲ 강줄기와 갈대밭 사이로 만들어진 오솔길(좌), 세찬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우) ⓒ 뉴데일리
    ▲ 강줄기와 갈대밭 사이로 만들어진 오솔길(좌), 세찬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우) ⓒ 뉴데일리

    그 갈대밭 끝자락에는 긴 방죽이 이어진다. 금강과 저 너머 군산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까지 확 트이게 한다. 겨울철에만 날아드는 고니, 청둥오리, 검은물떼새 등 철새들의 군무도 운이 좋다면 만날 수 있단다.

    금강은 4대강 중에서도 고도 문화권이 가장 풍성하게 형성된 곳이다. 그러나 금강 상류지역인 공주와 부여의 역사문화는 비교적 잘 알려진 반면, 논산, 강경, 한산 등 하류 일대는 겨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준이다. 최근 4대강 사업이 시작되고 그 어느 때보다 ‘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생태계를 위한 본류 사업도 중요하지만 자치단체와 연계해 문화, 관광 측면에서 ‘문화, 역사가 흐르는 강’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