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게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삶이 있다. 눈빛이 참 선한 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탄한 삶을 살았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여러 번이나.

  • ▲ 박희도 전 육군 참모총장 ⓒ 뉴데일리
    ▲ 박희도 전 육군 참모총장 ⓒ 뉴데일리

    박희도 전 육군 참모총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공수여단장으로 있던 1976년 8월 18일이었다.
    판문점에서 북한의 8.18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하자 지휘부의 결심에 따라 박 여단장은 김종헌 소령을 특공대장에 임명, 1공수여단 64명을 판문점으로 보내 당시 문제가 되었던 미루나무를 절단한다. 함께 북한의 불법초소 4곳도 때려 부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무기 휴대가 금지된 비무장지대 안에서 출동한 1공수여단 대원 모두   M16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으로 무장을 했던 것.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인 스틸웰 대장이 박 여단장을 몰아세우자 그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긴다.
    “내 부하들을 사지에 보내는데 그럼 적을 만나면 태권도 약속대련이나 하라는 이야기냐?”
    두 번째 역사의 무대는 12.12였다. 박 장군은 이때도 1공수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른바 경복궁 30단에서 최규하 대통령의 정승화 수사 재가가 미뤄지자 박 여단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명에 따라 1공수여단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한다.

  • ▲ 박희도 장군이 지휘한 미류나무 절단 작전. ⓒ 뉴데일리
    ▲ 박희도 장군이 지휘한 미류나무 절단 작전. ⓒ 뉴데일리

    문민정부 이후 뒤집히는 역사의 시련을 인내한 박희도 장군은 근 3년을 총검이 아닌 신앙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지난 10월 30일로 창립 3년을 맞은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 상임대표로서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고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급박해 가는데 정작 호국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불교계가 침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박 장군은 뜻을 같이 하는 불교계 인사들이며 신도, 스님들을 규합해 ‘나라를 바로 잡자’고 거리에 나섰다. 육군 대장으로서 격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우국(憂國)의 절박함은 신분조차 잊게 했다. 육군의 이정구, 정진태 대장, 해군의 안병태 대장, 공군 김홍래 대장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이석복, 신윤희 장군들도 박 장군을 적극 돕고 나섰다.
    “대불총이 만들어지자 침묵했던 애국 불교도들이 많이 기다렸다는 듯 참가해줬습니다. 부산과 대구, 대전 등 지회만 6곳이 됩니다.”
    박 장군은 “국가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호국불교의 신념으로 국가안보를 위해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대불총의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사실 그동안 대불총과 박장군은 불교계에 지속적으로 올곧은 목소리를 내왔다.
    “나라가 있어야 종교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불교가 호국불교로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계속 불교계에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박 장군은 함께 승려들의 청정한 생활이며 보살도 정신도 강조하고 있다.

    박 장군은 지난 3년간 국민들이며 불교도들의 생각을 바로 잡고 좌파정권 10년 동안 무너진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대불총의 전국순회강연을 가장 의미 있는 행사로 꼽있다. 지난 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대불총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에는 400여 명의 부산 애국시민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대사재조명 토론회를 계속 전국을 돌며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발굴되지 못한 전국의 호국불교 유적 찾기와 호국불교 선양 운동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입니다.”
    박 장군은 국가 정체성과 호국불교의 이념에 대한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37년생인 박 장군은 지금도 국선도로 몸을 단련하고 매일 108배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500여명의 지인들에게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며 읽은 좋은 글들을 이메일로 보낸다. 신앙으로 나라를 지키는 그는 아직 ‘현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