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오늘은 고(故)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영결식의 날이다. 지난 닷새 동안의 ‘국장’ 진행 과정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달랐겠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의 소중한 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뒤죽박죽의 나라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망령이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공중파 TV들의 과장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고 김대중 씨의 죽음에 대한 일반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 열기는 사실은 냉담하기만 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공중파 TV는 마치 작당이나 한 듯이 이상한 각도로 촬영한 분향소의 똑 같은 조문 장면을 수없이 반복하여 방영하면서 조문 열기를 과장하여 보도하려 애쓰고 있지만 영결식을 하루 앞둔 23일 현재 언론이 전하는 전국적인 분향소 조문객 수는 47만 명에 불과했다. 4천8백만 명의 국민 가운데서 47만 명이라면 글자 그대로 ‘새 발의 피’라고 할 만 하다. 이것은 석 달 전 스스로 목숨을 거둔 고 노무현 씨의 ‘국민장’ 때 500만 명을 운운 하던 조문객 수자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국장’이라면 모든 국민은 관공서는 물론 각자의 가정에도 조기(弔旗)를 게양해야 한다. 언론은 고인과 평생을 티격태격해 온 정적(政敵)으로 병상(病床)에서 이미 생사(生死)의 경계선을 헤매고 있던 당사자인 고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화해(和解)’를 ‘선언’(?)했던 고인의 전임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의 상도동 자택 대문 앞에 걸린 조기 사진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의 어디를 가도 조기를 내건 가정을 발견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이번 ‘국장’의 기이한 풍경의 하나다. 엊그제 고인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광주시(光州市)를 다녀 온 사람은 이곳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분향소가 동(洞) 사무소마다 차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모습은 뜸하기만 하더라고 전하고 있다.
     
    이 같은 ‘국장’의 모습은 두 가지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 하나는 대다수 국민이 극단적으로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감정을 가지고 고인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번에 고인의 장례 격식을 ‘국장’으로 만든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결정이 극도로 무리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국장’ 결정이 알려진 후 과격한 보수ㆍ애국 시민단체들은 거리에서 격렬한 ‘국장 거부 운동’을 전개해 왔다. 물론 이들의 거리 투쟁의 실제 참여자는 소수의 행동파에 국한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조기 게양을 거부하고 분향소 조문을 자제함으로써 ‘국장’에 대한 거부 의사를 무언(無言)으로 시위(示威)한 것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관리소 측이 하루 몇 번씩 단지 내 방송 시스템을 통하여 조기 게양들 독려해 왔지만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이 같은 일들은 이번 고 김대중 씨의 ‘국장’은 말은 ‘국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정부장(政府葬)’, 아니 그보다도 ‘청와대장(靑瓦臺葬)’으로 의미가 축소ㆍ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무리수(無理手)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고 김대중 씨의 죽음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단한 결정 가운데 ‘국장’이라는 장례의 격식보다도 많은 애국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결정은 고인의 장지를 서울 흑석동 현충원의 국립묘지로 정한 것이었다. 국립묘지는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 과정과 1950-53년의 6.25 전쟁 수행 과정, 그리고 그 뒤의 산업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북한의 대남 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다가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의 묘역이다. 그런데, 죽음의 순간까지도 대한민국보다도 북한의 이익과 입장을 옹호하는 데 진력했던 고인의 유해를 이 신성한 호국 영령들의 묘역에 안장(安葬)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유혼(幽魂)들의 세상인 저승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제 오늘부터 그곳에서는 현충원의 국립묘지에 함께 묻힌 고인의 유혼과 그를 제외한 수십만 호국 영령들 사이에 이승의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반지의 제왕(帝王)’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대전란(大戰亂)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과연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앞으로 국립묘지의 김대중 묘역에서 그의 추종세력들이 시도 때도 없이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이행 촉구 집회가 열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직ㆍ간접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하여 그곳에서 영면(永眠)하고 있는 호국의 혼백들은 집단으로 이주(移住) 길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토 안에서 이주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부의 관리들은 과연 이 같은 가능성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고 김대중 씨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의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고인의 타계(他界)를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보다 많은 수의 나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재를 숫제 무시ㆍ외면하면서 그들의 상처 받은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는 이상한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이로써, 그는 재작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또 한 차례 무자비하게 짓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오늘 ‘국장’이 지나고 나면, 이 대통령은 미망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에게 건넸다는 “고인에게 ‘국장’으로 예우할 ‘업적’이 있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고 김대중 씨가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일을 많이 했을 뿐 아니라 국가를 반역하는 일도 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기를 다는 것은 물론 분향소로 조문하는 것조차 거부한 대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고 김대중 씨에 대한 장례를 통하여 또 한 차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이 대통령과 그의 정부에게 등을 돌린 이 많은 사람들이 과연 앞으로 이 대통령과 그의 정부를 얼마나 믿고 따를 것인지 불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만약 이 대통령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보수 성향 유권자 대다수의 정서는 모르는 체 외면하면서, 지난 번 고 노무현 씨에 대한 ‘국민장’에 이어 이번에는 고 김대중 씨에 대한 ‘국장’을 고인의 추종세력들에게 일종의 ‘뇌물’로 진상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서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같은 생각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과 얼마나 괴리된 비현실적인 착각인가를 깨닫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작년 봄 ‘광우병 촛불시위 파동’의 과정이 웅변해 준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부가 이 같은 자명(自明)의 사실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다면 이 나라가 앞으로 겪어야 할 시련과 불행은 그들만의 몫으로 좁혀질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