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상륙한 네이키드뉴스가 개국 한달여만에 파국을 맞았다고 한다. 한국 지사장은 이미 출국해 종적이 묘연하고, 이사들과의 연락도 두절이며, 네이키드 앵커 및 직원들에 대한 월급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파산이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는 일일 텐데, 한국판 네이키드뉴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한달여만에, 초고속으로 파국을 맞은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파국을 논할 때는 아닐 수도 있다. 내부적으로, 그리고 물밑으로는 경영정상화의 작업을 하고 있고, 이 업에 뛰어든 여성 네이키드 앵커들의 각오와 포부가 대단하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현재 나타난 바로는, 서비스마저 중단된 상태라고 하므로 아무래도 파국을 논하는 데에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판 네이키드 뉴스가 왜 이렇게 빨리 파국을 맞고, 한국에서 쫓겨나게 되었느냐 하는 거다.

    일단은 한국인의 정서가 이에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직업에는 강한 귀천이 있다. 사농공상의 서열의식이 강했던 한국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은 이의 계승이며, 정서의 핵상이라고 할 수 있다.

    뉴스 앵커란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귀한 직업이다. 경제상면에서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면에서나 모두 그러하다. 남성에게도 그러할진대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해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뉴스 여성 앵커란 남성 앵커의 보조이지 주진행자로는 등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만큼 귀하고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귀한 여성뉴스앵커 자리를, 네이키드 앵커가 쉽사리 꿰차고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정서상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다시말해 앵커라는 직업의 귀함과 네이키드라는 업의 천함이 마구 착종돼 귀함과 천함의 구별을 혼란시키고 있다는 건데, 이는 한국인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음성적인 것이 양성적인 것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지닌 이게, 한국인의 정서구조인 것이다.

    두번째 이유로는 정부의 규제를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판 네이키드뉴스는 출발하면서 청소년용 버전과 성인용 버전을 구분했는데, 성인용 버전보다 청소년용 버전이 호황을 누렸던 모양이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대거 가입을 하고 몰려든 탓인 듯한데, 이 때문에 정부에서 규제의 손을 댔고, 이로인해 네아키드뉴스는 청소년용 버전의 서비스는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안다.

    성인용 버전에도 규제의 흔적은 있다. 다른 나라의 네이키드뉴스는 전라를 추구하지만, 한국판 네이키드뉴스에서는 상반신 노출까지만을 허용한다. 전라의 허용과 상반신 노출까지만의 허용은 큰 차이이다. 비록 팬티 한장의 차이이지만 그 팬티 한장이 하드코어와 소프트코어, 포르노와 에로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네이키드뉴스는 전라요 포르노인데, 한국형 네이키드뉴스는 에로요 소프트코어라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서비스상의 문제점으로 다가들기 십상이다. 영 서비스가 안좋네 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가 안 좋다고 생각한다면 소비자는 본전을 생각하게 되고, 그 서비스를 외면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네이키드뉴스가 한국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뉴스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점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뉴스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관점이나 태도는, 한마디로 몹시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뉴스를 사실로써 받아들이고, 뉴스가 사실을 다루며 사실을 추구한다고 믿고 있다. 광우병사태때 MBC를 보면서 한국사회가 보여준 그 집단광기를 보면 쉽사리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와는 좀 다른 관점을 지닌 듯 싶다는 느낌이 든다.

    서구사회에서 역사의 아버지는, 누구나 알다시피, 헤로도투스이다. 헌데,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투스에 대하여 서구사회는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투스는 그 이름 이외의 닉네임도 하나 지니고 있는데, 별로 명예스럽지 못한 닉네임이다. '세계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거짓말쟁이'라는 닉네임이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의 아버지인 동시에 최초최고의 거짓말쟁이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역사란 실은 허구이며 거짓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과거 사실의 집적체라면, 현재 사실의 집적체인 뉴스는 그럼 어떻단 말인가. 마찬가지이다. 뉴스 역시 허구요 거짓인 것이며, 어떤 목적을 위하여 구성된 구성체요 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인식체계하에서라면 뉴스의 희화화는 가능하다. 뉴스 자체가 희극인 것이므로, 희화화는 뉴스의 본성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뉴스에 대한 인식체계는 이와같지 않다. 이와는 아주 정반대이다. 아주 심각하다는 건데, 뉴스를 본질적으로 희극일 수 없는 것으로, 구성된 것일 수 없으며, 사실 그 자체라는 인식구조, 관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사회의 뉴스에 대한 인식구조하에서는 뉴스의 희화화는 불가능하다. 이는 신성모독이며, 불경죄에 해당되는 일인 것이다. 세상에 불경죄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겠는가.

    네이키드뉴스란 기본적으로 뉴스에 대한 희화화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왜 네이키드뉴스가 실패했는지 감이 잡힌다. 뉴스는 사실을 다루지만 또 기본적으로 담론이며, 허구라는 사정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의 희화화는 신성모독이요 불경의 죄라고 우리 사회가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스란 사실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구성된 담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투스가 역사의 아버지인 동시에 세계 최초최고의 거짓말쟁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말해, 뉴스의 희화화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며, 뉴스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와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네이키드뉴스가 채 한달도 안돼 한국사회에서 실패하고 철수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다. 네이키드뉴스의 한국사회에서의 재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 뉴데일리 시민논설위원 '자유야'님의 칼럼입니다. 외부필진 및 시민논설위원의 글은 뉴데일리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