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중·고교생들이 무리지어 승차해 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입에 담지 못할, 성(性)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스러운 욕설이 대부분입니다.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려고 하게 되는 욕을, 우리 아이들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는 겁니다. 주위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중요한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왁자지껄, 중학생 또래 서너 명이 탔습니다. 하도 시끄럽게 떠들며 서로 욕설들을 해대기에 크게 꾸짖었습니다. 잠잠해 지기에 내 큰 목청이 먹혔나보다 했지요. 한데, 다음 정거장에서 우르르 내리더니 "에이 ×팔! 왕 재수…"하며 달아나는 겁니다. "이런…후레자식들!" 벌떡 일어났지만, 자동문은 이미 닫혀버렸습니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벌렁댑니다.

    예전에도 다투거나 할 때 욕설을 했습니다. 욕이라야 '후레자식!'이나 '빌어먹을 놈'같은 비속어나 '×같은 놈'처럼 동물에 비유하는 게 고작이었지요. '후레자식'과 같이 남을 비하하는 말 중에 "씨알머리가 없다"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이 말은 '그 태생의 뿌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혈통이나 종자가 보잘 것 없다'는 뜻입니다. 형편없는 혈통의 집안에서 나서 보고 배운 거 없이 자랐기 때문에, 무례하고 건방지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요.

    여기서 '씨알'은 종자로 쓸 곡식의 낟알이나, 닭 따위 조류(鳥類)의 부화용 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씨알'에 붙은 '~머리'는 어떤 말의 뒤에 붙어서 비하의 뜻을 나타내는 데 쓰이지요. 튼실해야할 '씨알'이 부실하면 '씨알머리'로 낮춤말을 듣게 됩니다. 인정머리·주변머리·싹수머리·안달머리·주책머리 따위가 그런 말들에 속합니다. 남의 혈통을 얕잡아서 욕되게 이를 때 '그 사람의 종자'라는 뜻으로 '씨알머리'를 쓰는 이유입니다.

    '씨알'과 관련한 또 다른 관용구로 "씨알도 안 먹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애초 "씨알이 먹다"라는 긍정적인 어구였답니다. 언행의 앞뒤 조리가 있고 실속이 있다는 뜻으로 쓰였었지요. 예전에 베를 짤 때 가로줄을 씨줄이라 하고 세로줄을 날줄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가리새 사이로 정확하게 한 올씩 씨실을 넣어서 짜 올라가야 한답니다. 씨실이 잘 먹어 들어가야 좋은 베를 짤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 "씨가 먹는다"입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뜻과는 판이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변하여, 지금은 '씨가 안 먹힌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이 들은 체도 않고, 꿈쩍도 안 하는 상태 따위를  말하지요. 여기서는 '씨'에 강조의 뜻인 '알'을 붙여 그 뜻을 강하게 한 말이 '씨알'입니다. 이렇게 하여 "씨알이 안 먹는다" "씨알도 안 먹힌다"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관용구가 생겨난 것이랍니다.

    "씨알머리가 없다"는 싹수가 없고 건방지다, 실속이 없고 하찮다, 생각이나 줏대가 없다는 의미이며, "씨알도 안 먹힌다"는 설득과 이해가 안 되는 꽉 막힌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