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세돌 9단.  ⓒ 연합뉴스
    ▲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세돌 9단.  ⓒ 연합뉴스

    국내 바둑랭킹 1위 이세돌(26) 9단이 "당분간 중국리그에 전념하겠다"며 "한국에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2~3년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밝혀 바둑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 소공동 소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 9단은 "(자신의)휴직계 제출로 인해 팬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잘잘못을 떠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 "다만 저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프로기사회가 일방적인 다수결로 제재를 결의한 상황에서 더 이상 바둑을 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사실 이 9단의 잇단 '돌발 행동'과 '거취' 문제는 바둑계에선 그동안 수많은 논란을 양산하며 파문을 몰고 왔던 최고의 이슈였다. 하지만 정작 바둑계에선 쟁점의 핵심사안에 대해 정확한 언급을 회피하며 '사실 알리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일반 언론과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월 26일 프로기사회가 한국리그 등 국내기전에 소홀한 태도를 보인 이 9단에게 '징계안'을 냈고, 이에 이 9단이 지난 6월 8일 1년 6개월의 '장기 휴직계'를 제출함으로써 양측의 갈등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당시 프로기사회가 내세웠던 이 9단의 징계사유는 ▲시상식 불참, ▲바둑판 사인 거부, ▲중국리그 대국료의 일부 (한국기원)납입 등의 문제였다.

    실제로 이 9단은 대국 스폰서에게 사인을 잘 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우승자나 결승에 나선 두 대국자가 바둑판이나 대국판에 사인을 하는 것은 바둑계의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이 9단은 예전부터 국내리그는 물론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사인 승낙을 쉽게 하지 않아 대회 관계자나 동료들을 곤혹스럽게 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용진 바둑전문기자는 최근 자신이 쓴 칼럼에서 "이세돌 사태는 예고된 필연이었다"며 이 9단의 무수한 사인거부 사례를 들었다.

    정 기자에 따르면 이 9단은 지난해 초 LG전자 구자홍 회장(한국기원 이사 역임)의 '한국바둑꿈나무장학금'에 대한 10년간 후원을 마무리하는 종결 기념자리에서 구자홍 회장과 이헌조 고문에게 전할 바둑판에 사인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남자단체전 시상식에서 중국기원 관계자가 한국대표팀의 사인을 부탁했으나 이마저 거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대회 참가선수 전원 사인) .

    또 이 9단은 지난해 한국바둑리그에서 제일화제팀으로 뛰며 대회가 끝난후 이홍렬 감독이 구단에 증정할 바둑판에 사인을 요청했으나 승낙하지 않았고, 2008년 12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결승4국 전야제가 열렸을 당시에도 한국기원은 전야제에서 하이원 사장에게 전달할 바둑판에 양 대국자의 사인을 담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이 9단에게 미리 부탁했으나 거부해 애를 태웠다고. 결국 하이원리조트에 도착한 김인 9단이 이 얘기를 듣고 이 9단에 대한 설득에 나서 전야제 이전에 간신히 사인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정 기자는 ▲2004년 한국바둑리그 ▲2008년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포상식 ▲지난 4월 후지쯔배 8강 추첨식 등에도 이 9단이 불참하거나 추첨을 거부하는 등의 행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9단은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몇 차례 시상식에 불참한 것은 사실이나 몸이 안좋았다던가 해외 원정에 따른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바둑판 사인에 인색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관계자들이 좀 더 신중하게 부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또 프로기사회가 자신에 대해 징계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 "한 달 전에 미리 불참을 통보했는데 이에 와서 제재를 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덧붙여 이 9단은 "중국리그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것은 중국의 바둑리그가 세계대회와 유사하게 진행돼 속기전 위주인 한국리그보다 나에게 더 잘 맞기 때문"이라면서 "내 가치를 인정해주고 대우를 해주는 곳에서 뛰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한편 2일 열리는 한국기원 이사회에서 과연 이 9단에 대해 어떠한 처분을 내릴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