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본에 발령이 나서 부임했더니 며칠 뒤 유해발굴을 맡으라는 거예요. 군인이 명령을 받았으니 당연히 임무를 맡았지만 처음엔 썩 내키진 않았습니다.”

  • ▲ 국방부 유해발굴단 이용석 중령 ⓒ 뉴데일리
    ▲ 국방부 유해발굴단 이용석 중령 ⓒ 뉴데일리

    6월 23일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 기자를 안내하러 산 입구까지 내려온 국방부 유해발굴단 이용석 중령(52)의 얼굴은 햇볕에 검게 타 있었다.

    유해 발굴지인 8부 능선까지 오르며 이 중령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예요. 임무 수행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너무 막중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 소명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애타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릴 유족들, 그리고 이름 모를 전선에서 외롭게 백골로 남은 전사자들을 생각하면 휴일에도 발길은 발굴 현장으로 향하게 된단다.

    “찾지 못한 아군 전사자가 13만 명입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발굴 작업을 통해 국군 전사자 유해 3000여 구가 수습됐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신원 확인이 된 전사자는 40여명 뿐입니다.”

    현재 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락산은 6.25때인 1952년 1월31일부터 3일간 국군 1사단과 중공군이 격전을 벌였던 장소. 그 동안 15구의 유해가 발견돼 수습된 곳. 8부 능선에서 유해발굴감식단과 51사단, 55사단 병력이 무더위를 무릅쓰고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전사(戰史)를 뒤지고 지역주민이나 참전용사들 증언을 토대로 탐사를 하고 발굴 작업을 합니다. 전사자 매장기록이 거의 없어서 작업이 더디지요. 굴착기를 동원하면 유해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삽으로 퍼내야합니다.”

    하지만 작업의 어려움보다 개발로 인한 지형 변화와 현장 훼손은 가장 이 중령을 괴롭히는 걸림돌이다.

    "참전용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뜨시는 분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2~3년 내에 노력을 집중하지 못하면 우리는 수많은 호국의 얼을 땅 속에 영원히 묻어놓고 지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중령은 이런 절박함을 알기에 휴일에도 차를 타고 전국 격전지를 돈다. 지난 10년간 그는 60만㎞를 달렸다. 대부분의 격전지는 높은 산이나 깊은 골짜기. 산속을 헤매고 골짜기를 누비느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고 위험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호국영령들이 돌봐주셔서 무사했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을 위해 돌아다니니까 지켜주시는 거죠.”

    금속탐지기에서 반응이 오고, 증언대로 발굴을 해도 허탕치기 일쑤다. 수십 곳을 파야 겨우 한 곳에서 유해가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한 분이라도 수습해 모실 때는 너무 보람을 느낍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인데 너무 늦게 모셔서 죄송한 마음도 크고요.”

  • ▲ 수습된 유해 일부. ⓒ 뉴데일리
    ▲ 수습된 유해 일부. ⓒ 뉴데일리

    유해와 함께 발굴된 유품에서 학교 배지가 나오거나 만년필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학도병들이십니다. 나라를 위해 가방을 내던지고 훈련도 제대로 못받고 달려와 산화하신 분들이죠. 정말 저희 붓질 한 번, 삽 질 한번이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 없도록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이 중령은 “철없는 친북세력, 정신 나간 종북세력이 이 현장을 한번이라도 와서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 분들을 낯선 전장에서 외롭게 눕게 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 중령은 전 정권 때 386출신 한 실세 인사가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았다가  “이거 우리 보이려고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무척 놀랐다고 기억했다. 

    “다행히 정부가 국방부 차원에서 이뤄지던 유해 발굴을 범정부 사업으로 승격했습니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9곳이 협력하기로 한 것이죠. 뒤늦게나마 다행입니다.”

    이날 모락산에서 발굴된 유해는 모두 3구. 유해는 DNA추출과 분석을 거쳐 유가족을 찾거나 그렇지 못하면 현충원에 임시 보관된다. 태극기에 쌓인 유골함에 담긴 호국의 혼들은 후배 품에 안겨  산 밑으로 모셔졌다.

    이 중령은 경건한 자세로 경례를 올린 뒤 말했다.

    “제가 내년에 제대를 해요. 하지만 그 뒤라도 발굴 현장이 있다면 달려가 자원봉사라도 할 겁니다.”

  • ▲ 수습된 유해를 유골함에 모시고 장병들이 경례를 올리고 있다. ⓒ 뉴데일리
    ▲ 수습된 유해를 유골함에 모시고 장병들이 경례를 올리고 있다. ⓒ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