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 사설 '인사로 망친 정권 이미지, 공기업 인사로 만회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대한석탄공사 등 지식경제부 산하 18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절차가 다음주부터 진행된다. 기획재정부가 민간전문가로 선임하겠다고 이달 초 발표한 90여 개, 또 아직 방침이 결정되지 않은 190여 개 공기업 사장에 대한 후속 인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수석과 장관 인사에 이어 새 정부 들어 큰 규모의 인사로는 3번째다.

    이들 공기업 사장은 공모를 통해 3배수 정도로 청와대에 추천되고 청와대가 최종 낙점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결국 청와대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를 할 때마다 '고·소·영', '강·부·자'와 같은 조어(造語)를 낳았다. 이런 조어들이 확산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저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란 이질감이 심어졌다. 실체가 없는 광우병 공포가 삽시간에 전 국민에 먹혀들다시피 한 것은 이런 반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두 번의 인사에서 뽑힌 장관들의 평균 재산은 33억원, 청와대 수석들은 35억원이었다.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은 무신경 인사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상당수가 연고(緣故)가 없는 지역에 투기성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고위 공직에 오를 만한 도덕성과 능력에 명백히 의문이 제기되는데도 발탁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고선 반드시 "이 정권과 무슨 연(緣)이 있다"는 식의 뒷말이 돌았다.

    대통령과 청와대도 이제 인사 실패의 심각성은 충분히 인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4월 말 청와대 회의에서 "민간 CEO 중에서 경쟁력이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며 "누구를 주려고 마음먹고 형식적으로 공모하는 식이면 안 된다"고 했다. 재정부 배국환 차관은 지난 6일 대통령 지시사항을 공개하면서 "정말로 민간전문가를 선임하는지 여부는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로 합격점을 받을 상황이 아니다. 사람들은 낙하산이 내려오는지도 지켜보겠지만 '제2의 고·소·영' '제2의 강·부·자' 사태가 오는지도 주시할 것이다.

    지금 정권 주변에는 대선 때 대통령을 도왔거나 정권 실세들과 인연이 있지만 아직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숱하게 배회하고 있다. 이런 연(緣)이 미칠 영향을 차단할 수 있느냐에 이번 공기업 인사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조직을 과감히 바꿔 같은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몇 곳에선 공기업 사장 공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벌써부터 응모자들의 출신 학교, 출신 지역, 출신 기업, 다니는 교회를 놓고 여러 말들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력서엔 저마다 대통령의 감사장을 첨부하거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공기업 인사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예고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잘못된 인사로 석 달도 안 돼 정권 전체의 이미지를 망치다시피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