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대통령 이명박의 문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렇게 스르르 허탈하게 무너지는 참담한 상황.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소리내어 곡(哭)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대통령 이명박 지지도 20%대 추락. 엥? 하고 청와대는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정도도 높게 나온 것 아니냐고 조롱하는 ‘이명박 쥐어박기’가 대중 오락처럼 되는 풍조. 이를 읽어내야 한다. 왜 싫어하느냐? 그냥 싫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만 나오면 TV 채널을 홱홱 돌려가며 증오하다가 이명박을 꾹꾹 눌러 찍은 사람들. 이들이 이명박이 싫다는 것이다. 대선 승리 후 고작 5개월, 정권 출범한지 3개월도 채 안됐는데.

    거대한 민심 이반, 본질은 ‘이명박 문제’다. ‘이명박 피로증’이다. 대통령 이명박의 퍼스낼리티와 정치 스타일에 대한 통렬한 분석을 이명박 본인이 충언으로 받아들여 확 확 뜯어고치지 않으면 해법이 없다. 곡학아세하며 감싸돌고 있는 주변 세력을 물리치고 정말 곡하는 심정으로 민심을 경청해야 할 만큼 절박하다. ‘이명박식’만 고집한다면 탈출이 어려워 보인다. 벌써 늪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첫째, 대통령부터 자기 현시(顯示)·자기 과시욕을 크게 줄여야 한다. 사사건건 언론에 나와 뭔가를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내가 대통령 된 사람인데 하는 자기 확신·자기 몰두가 교묘한 저항 심리를 불러오고 있다. 황제에 대한 거부감이다. “내 경쟁자는 외국 지도자들이다.” 말이야 지당하지만 승자독식이 배어 있다. 청와대와 행정부도 황제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열중쉬어’ 하고 있다.

    둘째, 말 실수와 다변(多辯)이 ‘이명박 스트레스’의 주범 아닌가? 신기할 정도로 실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 안에서 대통령의 말을 관리하고 윤색하는 수문장, ‘마우스 키퍼(mouth keeper)’도 없다는 증거다. 봄날 꽃가루 풀풀 흩날리듯이 대통령 언어에 진중한 내용과 철학·소신이 없게 들린다. 가볍다. 이미지 빌딩에 실패한 원인이다. “노무현 반만 하라” “이명박의 모든 것이 싫다”는 구호가 터지면 청중이 뒤집어지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셋째, 정치적 신의가 부족해 보이는 이미지는 치명적 결점이다. 박근혜와의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여전히 국가 경영을 기업 경영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는 포용력이 절대 미덕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에게 포용의 정치력이 없으면 독재로 흐른다. 이명박의 독선적 성향은 박근혜 문제를 넘어 큰 문제다. 만약 ‘이명박·박근혜 공동정권’의 정신을 살리며 국정 운영을 해왔다면 이명박 지지도는 건국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을 것이다. 기업과 정치의 차이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넷째, 이명박 인사(人事)를 가급적 빨리 전면 쇄신해야 한다. 도덕성 결함과 실력, 모두 밑천이 드러났다. 도덕성은 부족하지만 일은 잘한다고? 그것도 아니다. 도덕성도, 능력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이미 각인돼 있다. 취임한 지 3개월밖에 안됐지만, 전면적 인적 쇄신의 결단을 내려야지 이대로 끌고가다간 오도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쇠고기 사태는 위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국정은 구멍이 송송 뚫리는데도 정국 전환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위기다. 청와대·행정부 인사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인사 쇄신은 다른 방법이 없는 외통수로 보인다.

    다섯째, 관료 장악 기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관료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사기(士氣)를 먹고 산다. 전봇대 뽑고 톨게이트 통과차량 숫자 세는 시시콜콜한 잡일에 동원되면서 자존심·자부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다. 경찰서 쫓아가 경찰서장을 호통치는 건 국가 행정 체계를 깨는 것이다.

    대통령 이명박은 지금 홀로 서 있다. 민심으로부터, 청와대와 행정부로부터, 정적들로부터, 심지어 친위세력들로부터도. 이명박의 위기는 ‘견습 대통령’ 3개월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 그걸 깨닫고 완벽한 새 출발을 시도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제2의 노무현’이 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