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시각'에 이 신문 김승현 부국장이 쓴 '환각의 다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30년 전 고교생때 도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서가에 가서 소설을 봤다. 그때 우연히 잡은 것이 이어령(76)씨의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였다.

    이씨는 양주동의 향가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던 재기발랄한 문학비평가로 20대부터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문화행정가다. 지금도 문화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서 조언을 듣는다. 이씨가 글쓴이의 귀찮은 질문에 기꺼이 응해주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초기 소설에 감명받은 어린 독자이기 때문이리라.

    ‘장군의 수염’은 1966년 ‘세대’지에 발표한 그의 첫 소설이다. 소설 속에 소설이 있는 액자형식의 추리소설이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대에 저급한 형식으로 꼽히는 추리소설로 인본주의 측면에서 군사정권의 권위적인 반공정책을 정면으로 다뤘다. ‘환각의 다리’는 4·19가 소재다. 잘려져 없어진 다리가 간지러운 독특한 심리적 기제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주인공의 내적 독백 형식이다. 인터텍스추얼리(intertextually·텍스트와 텍스트가 소통하는 상호 텍스트성), 페스티시(pastiche·혼성모방) 등 현재 유행하는 포스트모던 소설기법이 이미 이때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는 이런 기법들의 이름조차 없었을 때여서 항상 앞서 있는 그의 정신이 새삼 놀랍다. 특히 개인의 일상을 파괴하는 거대하고 잔인한 시대에 좌, 우 어느쪽으로도 쏠리지 않은 균형적인 휴머니즘 시각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최근 그가 ‘젊음의 탄생’(생각의 나무)이라는 책을 냈다. 월드컵 4강신화를 이뤄낸 서울시청앞 광장의 응원이 계기가 됐다. 그는 “돈도, 권력도, 이념 싸움도 아닌 일에 저렇게 열광하는 한국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라며 ‘한풀이의 어두운 굿판’이 끝나고 있음을 예측했다. 그리고 “훼방의 문화에서 응원의 문화로 물꼬를 돌리면 미래가 보인다”면서 “투사가 아니라 소리꾼의 감동이 이끄는 사회가 오고, 역사는 과거의 부정에서 미래의 창조로 날개를 달 것이다. 고통밖에는 줄 것이 없었던 낡은 정치 리더들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치어리더로 바뀔 것이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이씨의 생각대로 나가지 않는 것 같다. 지난주 청계광장에서 좌파계열 재야단체들에 의해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가 이번주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이것은 분명 ‘응원의 문화’는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에 의한 광우병 위험이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음을 한국의 과학계가 이미 공식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훼방의 문화’도 아니라 ‘위험한 선동정치’라는 생각도 든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청소년들이 주요 참여세력의 하나라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정치의식이 선진화된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왔다며 그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지만, “15살밖에 살지 않았다”면서 “‘미친소’고기가 학교급식에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왔다”는 그들의 ‘철없는’ 말이 도저히 ‘자발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만일 정말 ‘자발적’이었다면 이런 ‘비과학’을 감수성 예민한 이들에게 ‘주술’처럼 ‘주입’시킨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과거 운동의 중심이었던 대학생들의 참여가 낮아지자 급기야 청소년들을 ‘한풀이의 어두운 굿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소년은 ‘미성년’이다. 그들에게 ‘장군의 수염’이나 ‘환각의 다리’와 같이 균형된 시각에서 지적인 모색을 가르쳐야 한다. 피상적 관찰이 아니라 깊은 분석을, 격앙된 의견의 남발이 아니라 분별력 있는 판단을 교육해야 한다. 촛불이 청소년들을 이용한 위험한 정치적 불장난이 돼서는 결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