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TV에 의한, TV를 위한 광우병'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세계적으로 인간 광우병이 문제가 된 것은 1996년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광우병 위험성이 훨씬 낮아졌다. 원천적으로 동물성 사료를 금지시켰고 소의 나이까지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은 이렇게 줄었는데 우리 사회의 광우병 공포는 오히려 10년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TV의 위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광우병 공포를 촉발시킨 것도 TV이고, 그 공포를 매일 끌고 가는 것도 TV다. 인터넷 괴담도 TV가 파생시킨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엊그제 한 TV 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뉴스 시간의 3분의 2를 '광우병 큰일났다' 식의 보도로 메웠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한 오도(誤導)와 핵심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이 두드러졌다.

    그 뉴스의 앵커는 "미국 사람들도 다 먹는 소고기가 뭐가 문제냐고 하는데, 물론 우리도 미국처럼 30개월이 아닌 20개월 미만짜리를 먹는다면 괜찮죠"라고 했다. 미국 사람이 먹는 고기와 한국 사람이 먹는 고기가 다르다는 거였다. 사실과 다른 얘기다.

    미국 소 도축장의 공정에서는 30개월 이상으로 판정된 소와 30개월 미만으로 판정된 소를 각각 분리해서 특정위험물질을 제거시킨다. 광우병 위험성을 없애는 것이다. 또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미국이든, 다른 97개국이든, 그중 한국이든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 미국 쇠고기는 96%가 미 국내용이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먹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양은 한국 사람이 먹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같은 쇠고기를 먹는 이상, 광우병 문제의 핵심은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로 좁혀져야 한다. 광우병 환자는 미국 땅에도, 한국 땅에도 없다.

    1997년 이전의 미국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 제거 조치가 전혀 없었던 쇠고기였다. 그런 쇠고기를 먹은 한국 사람 중에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없고, 우리와 유전자 구조가 거의 같다는 일본에서도 광우병 환자가 없다. 통상 10년이라는 광우병 잠복기도 다 지났다. "한국 사람의 유전자가 광우병에 더 잘 걸린다"는 TV 보도를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TV 뉴스에는 이런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광우병 사태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방미(訪美)에 맞춰 급하게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 지었다는 인상을 준 탓이 크다. 많은 국민이 화가 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이 우리 축산 농가의 피해라는 진짜 문제를 놔두고 광우병 논란으로 변질된 것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광우병 문제를 제기한 것도 축산 농가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것이었다.

    인간 광우병은 희귀병 중에서도 희귀한 병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광우병 논란은 사라지고 축산 농가의 절망만이 남을 게 뻔하다. 문제가 이렇게 잘못 굴러간 것에는 TV의 영향이 컸다.

    그 TV 뉴스에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한 중학생의 말이었다. "광우병 때문에 죽는 게 억울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꿈도 못 이뤘는데, 이제 공부 시작할 나이인데…." 어린 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든 TV의 가공할 힘 앞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TV가 왜 이렇게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하는지 방송계 관련자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지금 오픈 게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메인 게임은 뭐냐고 물었더니 "방송법 개정"이라고 했다. 이걸 막는 게 TV의 최대 관심사이며, TV의 광우병 보도의 근저엔 방송법 개정 추진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메인 게임으로 다가갈수록 광우병 소동과 같은 일이 몇 번이라도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 정부의 문제가 크지만 TV도 여기서 더 나가면 'TV에 의한 광우병'이 아니라 'TV를 위한 광우병'이라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