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허문명 논설위원이 쓴 <'인터넷 세뇌(洗腦)'>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3일 저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참가자의 70∼80%가 중고교생이었고 그중 대다수가 여학생이었다. 현장을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교복을 입은 채로 정치적인 구호를 외친 학생들도 많았다. 청소년들은 “머리털 나고 처음 나라 걱정에 잠 못 잔다”며 확인되지 않은 ‘광우병 괴담’을 쏟아냈다. 한 여고생은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 먹고 죽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나도 대학 가 결혼하고, 애 낳고 싶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든 여고 2년생도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독극물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다.

    “미친 소 대신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등 일부 연예인의 광우병 공포 발언에 자극받은 청소년도 있었다. 집회에서는 ‘미국 소는 미친 소’ ‘뇌 송송 구멍 탁’ 같은 선정적 구호에 ‘광우병 문제점 알리기 골든 벨’ 퀴즈풀이에다 ‘말 달리자’ ‘텔 미’ 같은 대중가요 개사곡들이 쏟아졌다. 어른들이 기획한 집회에 아이들이 동원된 것이 딱했는지 한 40대 남성은 “고등학생들이 뭘 알겠느냐”며 “먹을거리 같은 가장 민감한 사안을 동원해 청소년을 호도하는 어른들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과학적 탐구심이 왕성한 시기인 청소년들이 비과학적인 선동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나쁜 쪽은 선동하는 어른들이다. 판단력이 덜 형성된 청소년들을 반미와 광우병 공포로 세뇌시키기에 인터넷은 제격인지도 모른다. 검증되지 않은 지식과 선동이 판치는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대통령 탄핵 온라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누리꾼도 고교 2학년생이라니 놀랍다.

    이런 청소년들을 두고 진보를 표방하는 한 인터넷 매체는 “2004년 탄핵 반대 집회 때는 30, 40대 직장인이었는데 이번엔 청소년들의 뜨거운 현실참여 열풍을 보니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까지 논평했다. 과학과 국제적 기준을 근거로 한 차분한 보도나 논평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린 학생들을 인터넷은 물론 교과서와 교실에서 반미로 선동하고 세뇌하려는 세력으로선 ‘물을 만난’ 셈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폭력을 휘두른 중국인들에 대해 조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