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전 뉴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다. 60대로 보이는 한국 이민자와 20대로 보이는 미국청년이 도심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여느때와 같이 서로의 주장을 해 대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논쟁하다보니 젊은 청년이 두눈 똑바로 처다보면서 따져대는 것이 너무나 괘씸했다.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화를 벌컥 내면서 "하우 올드 아 유(How old are you), 하우 올드 아 유"라고 하면서 삿대질을 했다. 그러자 곧 미국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후 한국 이민자는 항상 그 일을 무협담처럼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미국 청년들이 그만큼 예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척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 중에서 보기 드문 척도가 하나 더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나이’로 평가하는 것이다. 논쟁하다 궁해지면 “나이도 어린 것이……”라며 몰아붙인다. 그 상대편은 “나이 값이나 하라”며 곧바로 대응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젊어도 탈이고, 너무 늙어도 문제가 된다. 장년은 청년을 철부지로, 청년은 장년을 고루한 존재로 업신여긴다. 입사시험에 나이 제한을 두어 떨어뜨리고, 구조조정 때는 ‘나이’ 순으로 퇴직시킨다. 

    그러나 이 ‘나이’ 척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나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는 ‘젊은 노인’을 대량으로 발생시키고, 반면에 ‘능력이 충분한 미성년자’를 양산한다. 여전히 일할 수 있는 장년을 길거리로 내몰고, 넉넉한 실력을 갖춘 청년을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진 인사에서 배제시킨다. 이렇듯 오로지 ‘나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일할 의욕과 능력있는 자들을 일터에서 내쫓는 풍토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나이’는 결코 근로에 있어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사기준에 결격사유가 되어서도 안 된다. 30대가 장관을 하면 어떠하고, 70대 노인이 벤처기업을 하면 또 어떤가. ‘나이’가 어리다고 모두 젊은이는 아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다 늙은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이와 정치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경륜이 있는 사람이 유리한 것일까, 아니면 젊은 사람들이 좋은 것일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젊은 정치인은 J.F 케네디이다. 44세에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또 빌 클린턴은 47세의 나이에 제4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고령의 정치인들도 많다. 윈스턴 처칠은 77세에 영국의 총리가 되었고, 넬슨 만델라는 75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은 73세의 나이로 제40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즉, 나이는 정치에 있어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직종으로 정치를 들 수 있다. 연륜에서 우러 나오는 깊이있는 혜안이 바로 올바른 정치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에서는 총선후보자 공천을 나이 순서로 결정했다는 말이 있어 국민들의 고개를 내젓게 한다. 나이가 많고 다선을 한 의원은 참신성이 부족해서 낙천시켰다는 이야기다. 단지 나이가 많고 다선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은 분명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당내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보수 성향을 지닌 몇몇 단체에서 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