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수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의 내각이 출범했다. 인선 와중에 장관 후보자 세 명이 낙마했고, 처음 열린 국무회의는 전 정권의 각료를 빌려다 간신히 법정 정족수를 채웠다. 새 정부가 출발하는 모양새가 영 말씀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잘못 뽑은 탓이다. 실권한 10년 동안 인재 풀(pool)이 바닥났다고도 하고, 사전 검증에 지난 정부가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인재 타령은 쓸 만한 장관감은 죄다 이전 정권들에 발을 디미는 바람에 데려다 쓸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찾아보면 장관 할 사람이 과연 그리 없었을까. 자천타천으로 장관 한 자리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말이다. 죄다 대통령과 이런저런 연이 닿는 사람들만으로 후보군을 좁혀놓다 보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작은 연못엔 대어가 살 수 없는 법이다. 스스로 인재 풀을 좁혀 놓으니 거르기도 어렵다. 여기다 기본적인 검증만 해도 줄줄이 흠집이 드러나니 그나마 후보가 몇 남지 않는다. 논문 표절이나 부동산 투기 여부를 세세하게 가려볼 틈도 없다. 재산이 좀 많아도 결정적 위법 행위만 드러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내각이 평균 재산 30억원을 넘는 ‘부자 내각’이다.

    재산이 많다는 게 장관으로서 결격 사유는 아니다. 축재 과정이 떳떳하기만 하다면. 그러나 부자들만으로 구성된 내각은 결격 사유가 된다. 국무회의는 행정부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정부 정책이 마지막으로 결정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 구성원이 한결같이 수십억원대 재산가라면 균형잡힌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첫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라면값이 100원이나 올라 큰 일”이라고 했을 때 서민이 느끼는 고통을 실감한 국무위원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땅 부자, 집 부자들이 모여 부동산대책을 논의하면 무슨 대책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설사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는다 해도 그래서 나온 부동산 정책에 국민이 공감하겠는가. 부동산만이 아니다. 서민과 부자의 이해가 엇갈릴 소지가 큰 복지·세금·노동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색안경을 끼고 볼 게 아닌가.

    다산 정약용 연구에 매진해 온 고전번역원장 박석무 선생이 마침 다산의 인재등용론을 보내왔다. 동양 통치철학의 중심적 경서인 『대학(大學)』을 다산이 독창적 이론으로 해석한 『대학공의(大學公義)』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양정치의 이상인 요순시대를 이룩하려면 용인(用人)과 이재(理財)가 핵심이다. 용인은 인재를 잘 발탁해 적소에 배치하라는 것이고, 이재는 경제정책을 올바로 펴 국부를 늘리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공약은 이재를 잘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니 통치의 한 축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그러나 용인에 이르러서는 첫발부터 삐끗했다. 다산은 용인의 요체가 지역이나 신분을 가리지 말고 참으로 능력있고 도덕성 높은 인물을 발탁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연에 얽매여 인재 풀을 좁혀 놓아서는 통치의 다른 한 축인 용인에 실패한다는 말이다. 용인을 잘 못하면 이재도 어렵다.

    부자 내각에 대한 논란이 커지다 보니 장관 청문회는 재산 문제뿐이었다.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쳐두고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느냐에만 온통 관심이 쏠렸다. 심지어 재산이 140억원에 이른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에 대해서는 “연극계의 복지 향상을 위해 사재 출연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강요 섞인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마지 못해 “(그럴 의사가) 있다”고 대답함으로써 청문회를 겨우 통과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부자 내각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부자 장관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사재를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부자들만으로 내각을 구성해서도 안 되지만 부자라 해서 장관을 못하게 해서도 안 된다. 유능한 부자가 돈벌이에 대한 부담없이 공직에 나서면 오히려 사심없이 일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돈에다 권력과 명예까지 챙긴다는 질시의 부담마저 벗어날 순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