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에 이 신문 오명철 전문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강남의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 장로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상당수 목회자가 교회 설교와 각종 집회에서 드러내 놓고 ‘장로 대통령’ 탄생을 호소했고, 몇몇 목사는 노골적인 지지 발언으로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이미 ‘이명박 장로’와의 친분을 내세워 위세를 부리고 다니는 기독교계 인사들에 대한 얘기도 돌고 있다. 

    ‘장로 대통령’ 행보 주시

    한국 기독교계는 앞서 이승만 김영삼 등 2명의 ‘장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들은 전란(戰亂)과 환란(換亂) 중에도 주일 예배를 거르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며 기도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이들 두 ‘장로 대통령’은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인 사랑과 용서보다는 권위와 독선에 치우쳐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임기 말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초라하게 경무대와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세 번째로 시험대에 오른 ‘장로 대통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는 당선인 시절 “2000년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처럼 ‘섬기는 리더십’으로 임기를 보내겠다” “종교가 다른 많은 사람에게서도 기독교 장로가 해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비(非)신앙인 또는 타(他)종교인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우선, 그가 당선인 시절 정부가 40년간 사용해온 봉황 무늬 대통령 표장(標章)이 너무 권위적인 것 같다며 취임 후 이를 없애라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시하자 당장 “기독교계 인사들이 ‘우상 숭배’를 없애려는 의도로 이를 사주(使嗾)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또 취임식 문장(紋章)으로 사용된 태평소 디자인도 “구약 성서에 나오는 기드온의 나팔에서 따온 것”이라는 뜬소문의 구실이 되기도 됐다. 국민들은 이처럼 ‘장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와 청와대, 첫 내각에 소망교회 출신 인사들이 다수 자리 잡으면서 ‘기독교 독주’에 대한 우려가 깊어졌고, 청와대 본관 건물에 ‘국립 청와대 소망교회’라는 간판과 십자가 첨탑이 그려진 패러디 영상이 인터넷에 등장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무례한 기독교’를 비난하는 댓글이 20만 건이나 게재돼 있다. 기독교계가 ‘장로 대통령’ 탄생을 경축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개독교’라는 고약한 용어를 써가며 비난 공격하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독교계의 뜻있는 인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多)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있어, 대통령을 배출한 종교와 이를 주시하고 있는 비(非)기독교인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 목사는 “새 대통령이 유명 교회 장로이고, 이 정권의 실세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큰 걱정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기독교의 오만은 한국 교회의 장래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에 든’ 한국 기독교

    그의 말처럼 ‘장로 대통령’의 탄생으로 정작 시험에 든 것은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일 것이다. 수준 높은 신도들이 훌륭한 목회자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려 깊은 기독교인들이 성공한 ‘장로 대통령’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000여만 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장로 대통령’에게 어떠한 지원과 특혜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매사 삼가고 조심하면서 남다른 겸손과 온유, 양보와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불교계 행사에 참석해 합장(合掌)을 하는 것이나, 유교 행사에서 3배(拜)를 올리는 일도 너그럽게 봐 넘겨야 한다. 이명박은 이제 ‘소망교회 장로’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대통령’인 것이다. 정말 변변치 않은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장로 대통령’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