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5일 오피니언면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가 쓴 칼럼 '떠나가는 자유인에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임기를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승부의 세계를 떠나 자유를 느낀다며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러나 성품이나 평소의 언행으로 보아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몇 가지 희망 사항을 적어 보고 싶다. 노 대통령 임기 초인 2003년 5월 필자는 ‘성공한 대통령 보고 싶다’란 제목의 동아일보 칼럼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대통령은 지역, 세대, 취미 동아리의 대표가 아니다. 반대자와 비판자들을 얼마만큼 비판적 지지자로 만들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잡초와 화초의 이분법은 무의식 차원에서라도 지워 주기 바란다. 민주화 노력이나 재야 투쟁 경력도 앞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지탄받는 친일파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독립운동의 이력을 갖고 있다. 말 바꾸기나 갈지자 행보도 없어야 한다. 도덕성을 내세운 정권일수록 도덕성 훼손은 치명적이다. 난생처음 연하의 대통령을 갖게 된 노년 세대는 꼭 성공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노 대통령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는 더욱 간절하다.’

    약자 편에 서서 우리 역사 공부를

    집권 초 노 대통령 주변에서는 대통령을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면서 비판에 대해 성토로 맞섰다. 장황하게 5년 전의 글을 인용한 것은 필자가 그런 본래적 ‘적대세력’의 일원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다. 당초의 지지자들도 등을 돌렸지만 지금 그것을 거론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점을 말하고 싶은 따름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27차례 해외 순방을 했고 55개국을 방문했다. 해외 순방 기간은 168일이나 된다. 그만큼 노고도 많았지만 진수성찬에 호강도 한 셈이다. 조선조 국왕이 서울을 함부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1인자 노릇을 한 것이다. 대접도 잘 받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대접받는데 들어오면 욕을 먹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밖에 나가 대우받는 것은 세계 10위 안팎 경제대국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는데도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에 대해서는 부정적 소리만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젠 책을 읽고 역사공부 하기를 당부한다. 우리 국민은 책을 읽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면 오죽 좋을 것인가. 고려조 이후 천년 동안 우리가 중국 대륙보다 유족한 생활을 한 때가 최근 몇십 년 말고 언제 있었나.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대꾸해선 안 된다. 그건 진보파가 할 소리가 아니다. 가령 17세기 전반에 조선 인구의 40%가 노비였고 19세기에야 10%로 줄었다는 통계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사회적 약자 편이고 그 벗임을 자처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읽어 보기 바란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찬양하거나 한국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를 점치고 고대하던 인사들의 헌 책만 보지 말고 새 책도 보기 바란다. 역사란 특정 시기를 따로 떼어서가 아니라 전체적 맥락에서 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보인다. 그래서 건국 60주년 때는 새로운 역사 이해를 들려주기 바란다.

    그때 가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버릴 수 없다면 할 수 없다. 그럴 경우엔 월 1500만 원에 이르는 연금 및 예우보조금 수령을 사절하고 ‘정의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패배한’ 약속의 땅을 찾아 여행길에 나서기를 바란다. 5년간 근무한 전직 대통령의 수령금액은 20년 봉직한 교원이 받는 연금의 7배다. 노 대통령은 대지 3700여 m²(약 1200평), 연건평 1280m²(약 387평)에 이르는 신축 사저로 돌아간다. 경제대국 전직 대통령이 누릴 만한 규모다. 그것을 시비하는 일부 세평에 동조하지 않는다.

    조국이 베푼 은혜 보답하길

    다만 사회적 약자가 그 집주인을 진정 자기네 편이며 벗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하는 점은 헤아려 보기 바란다. 또 풍족한 환경에서 심도 있는 역사공부로 조국이 베푼 은혜를 깨닫고 조용히 보답하기 바란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이자 입법자인 솔론은 “하루하루 많은 것을 배워 보태며 늙어 간다”고 적었다. 실패한 정치가 공자가 동녘의 큰 스승이 된 것도 많은 것을 배워 보태며 늙어 갔기 때문이다.